‘후배들에 장학금’ 수의사 딸 마지막 소원 이룬 아름다운 父情


[조은뉴스=온라인뉴스팀]   “대학 졸업 후 훌륭한 수의사가 돼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꼭 장학금을 줄 거예요.”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딸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공부도 잘 하고 효심도 많았던 딸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1년 후 딸을 대신해 수의사의 꿈을 이룰 수의학도 후배 4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건국대학교는 18일 교내 수의과대학 ‘유혜선 세미나실’에서 수의과대학 본과 4학년 재학 중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지난해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유혜선(당시 25세)학우의 부모가 기탁한 ‘유혜선 장학기금’의 첫 수여자로 여승구(수의과대학 본과2년) 학생 등 수의과대학 학생 4명에게 각각 20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날 수여식에는 하늘나라로 떠난 딸의 이름으로 수의학 전공 후학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장학기금을 기부한 고 유혜선 학우의 아버지 유한욱(56), 어머니 황명숙(52)씨가 참석해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증서를 전달하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날은 고 유혜선 학생을 품에서 잃은 지 꼭 1년이 되는 1주기 기일이기도 했다.

송희영 건국대 총장과 김휘율 수의과대학장 등 교수들과 고 유혜선 학우의 친구와 동료, 수의과대학 후배 학생 등 50여 명도 자리를 함께 해 사랑하는 딸을 품에서 잃은 아픔을 딛고 ‘딸과 같은 자식 수 십 명, 수 백 명을 기르는 내리사랑의 마음으로’ 승화한 유씨 부모의 ‘아름다운 뜻’을 기렸다.

“정말 아름다웠던 딸 아이는 가슴에 묻었지만, 자랑스러웠던 이름과 수의사의 꿈만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와 학우들이 딸을 기억해주고, 장학금을 받은 수의학도들이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수의사가 돼 딸의 못다이룬 꿈을 이루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유씨는 학생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지 못했다. 고 유혜선 씨의 부모는 지난해 10월 딸의 49재를 앞두고 8,00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유혜선 장학기금’으로 총 1억 3,000만원을 기탁했다.

건국대 수의과대학은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가정형편과 앞으로의 포부까지 고려해 선발해 달라’는 뜻에 따라 수의학과 전공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성적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건, 앞으로의 학업과 사회기여 계획 등을 감안해 장학생 4명을 선정했다. 이날 장학금수여식에서는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와 동문들이 펼치고 있는 ‘내리사랑 장학기금’ 수혜학생 4명도 각각 200만원씩의 장학금를 받았다.

이들 학생 8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로 자리를 잡으면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출연하는 등 ‘내리사랑’을 실천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내리사랑장학기금은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의 학비 지원을 위해 2010년 3월부터 매월 월급에서 일정액씩을 적립하기 시작해 동문과 학무도 등도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2억 원을 모았다.

어머니 황명숙씨는 “학업 성적이 좋아 등록금 전액 감면 장학금을 받던 딸 아이가 ‘졸업 후 수의사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꼭 장학금을 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건국대 수의과대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정말 자랑스러웠던 딸이었다”며 장학금 수여식 내내 눈시울을 다. 아버지 유씨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마음 씀씀이가 예뻤던 딸”이라며 “후배들이 우리 딸이 못 이룬 멋진 수의사 꿈을 이뤄주고 딸의 발자취를 후배들이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혜선씨의 부모는 딸이 졸업하면 미국 유학을 보내주기 위해 차곡차곡 모아온 학자금에다 사고 보상금까지 보탰다. 유혜선 학우의 가족들은 ‘유혜선 장학기금’을 추가로 적립해 더 많은 수의과대학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 장학금을 되돌림해 후배들을 도와줄 예정이다.

고 유혜선 학우는 건국대 수의대 6년 동안 학과 수석을 독차지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최종 학기에 치르는 국내 수의사 국가고시에서 수석을 기대했을 정도였다. 2009년에는 1년 동안 미국 버지니아 공대 교환학생으로도 갔다 왔으며 사고 전 치런 미국 수의사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그동안 278학점이나 이수하면서 평균 평점이 4.38(4.5만점)점. 이수학점과 커리큘럼, 학사관리가 깐깐하기로 유명한 수의대에서 계절학기까지 포함하면 7년간 17학기를 다녔다. 혜선씨는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지난해 8월, 미국 수의사 시험을 치른 뒤 친구들과 공중방역근무의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강원도 고성을 다녀오다가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크게 다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학업 성적이 좋아 등록금 전액 감면 장학금을 받던 혜선씨는 부모에게 “더 힘들게 공부하는 친구도 많은데 내가 받아 미안하다”며 “수의사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꼭 장학금을 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혜선씨의 부모가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장학금을 기부한 것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닌 딸이 “졸업하면 꼭 수의사가 돼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겠다”던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 유혜선 학생에게는 지난 2월 학사학위와 명예 졸업장이 수여됐으며, 수의과대학에는 헌정 강의실도 만들어졌다.

송희영 건국대 총장은 “자랑스러운 딸을 잃은 큰 슬픔과 아픔을 딛고 후배 수의학도들을 위해 큰 뜻을 베풀어 주신 고 유혜선 학생과 부모님의 따뜻한 정성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후배 학생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사회의 대들보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과 용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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