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유상석 기자]  화제의 중심이던 총선이 끝났다. 우선 이번 총선의 손익계산표를 작성해 보자. 많은 사람이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이 이긴 게 아니라 나머지가 진 것에 가깝다. 새누리당이 이겼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참패가 당연할 상황에서 그 정도의 피해를 보지 않았고, 오히려 과반 의석 획득이라는 상징적 결과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즉 당초 예상 수치에 비해 훨씬 많은 의석을 얻었기 때문이지, 통상적 의미의 승리라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명목상의 승자는 새누리당이지만 최대 수혜자는 민주통합당이라는 든든한 비빌 언덕을 얻고 의석까지 다수 확보해 제3당의 위치를 얻은 통합진보당이며, 최대 피해자는 의원급 인물들을 포함해 그야말로 속 알맹이를 전부 뺏겨버린 진보신당이다. 두자릿수 의석의 호시절을 뒤로 한 채 단 3석만을 건지며 몰락한 자유선진당은 피해 정도로 보자면 아슬아슬한 차이로 2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차려놓은 밥상조차 먹지 못한 꼴이지만, 그래도 지난 18대 총선에서의 81석보다 46석 늘어난 127석을 확보함으로써 승리라고도 패배라고도 보기 어려운 어중간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총선이 일단락되면서 정국은 재편되었다. 그러나 2012년은 끝나지 않았다. 이때까지의 정국이 총선이란 하나의 고개를 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대선 레이스라는 높은 산을 오를 차례가 되었다. 높은 산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각 정당은 숨 고를 새도 없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등정에 대비하고 있다. 그런데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있는 각 당 중, 새누리당은 판정승의 기쁨을 음미할 새도 없이 홍역을 앓고 있다. 총선에서 문제시된 세 명의 당선자에게 조치를 취하느냐의 문제로 당 안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명목상의 승리와 실질적인 방어를 이뤄냈다. 새누리당의 승리에 이바지한 것은 박근혜, 그리고 새누리당과 유권자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위기감이다. 특히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연대에 따른 위기감 고양이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뭉치게 했고 중도층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패배 혹은 참패를 예상하는 많은 전문가의 진단과 반값 등록금 시위로 대표되는 반여권·반정부 바람, 서울시장 선거 등 대형 선거에서의 야권 승리, 기존 정치-특히 여권에 대한 반감으로 일어난 안풍 등은 충성도 높은 여권 지지자들에게 위기감을 주기 충분했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도 위기감이 있었다. 유권자에게 "변하고 있다, 최소한 변하려고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한 것이 그 증거다.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까워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대거 비대위로 끌어들이는 데서부터 변화하고 있음을 호소했으며, 기존 유력 정치인들을 후보단계에서부터 배제해 대내외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보수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이상, 위기론으로 대선까지 헤쳐나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대체할만한 다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새누리당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위기론의 대체품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을 때부터 일으키고자 노력해온 당내 혁신의 바람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씌어 있던 여러 이미지야말로 새누리당 최대의 굴레고, 따라서 최대한 빠르고 철저하게 이를 벗는 것이야말로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새누리당의 지상 과제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바람을 만들려 할 순 있을지언정, 새누리당은 이 바람을 버릴 수 없고 버려서도 안 될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혁신 시도가 반짝 쇼로 끝나면 안 된다!

문제는 혁신 시도가 반짝 쇼로 끝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계속되는 혁신에는 힘이 들며 단 한 차례의 쇼로도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대선 레이스는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나서 ‘새누리당의 혁신이란 한 차례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공격한다면, 새누리당 입장에선 다시 상대방이 실책을 범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진다. 요행에 승부를 걸게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의 거듭된 실책이 빛을 바라게 했을 뿐 정권심판론이 완전하게 무효하지 않았음을 잊어선 안 된다.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과 지역색 강화로 연이은 승리를 거둔 지방에서와 달리, 수도권에서의 결과는 결코 승리라 볼 수 없으며 야권연대와 비교했을 때 총 득표 수에서도 밀렸다. 대선은 지역구별로 치러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당명까지 바꾸게 한 위기의 근본원인은 한나라당이 갖고 있던 여러 이미지, 88만 원 세대와 높은 기름값, 비싼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팍팍해진 서민 생활, 그리고 이를 막지 못한 한나라당과 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기름값과 등록금을 당장 내린 것도 아니며, 사실 대선이 시작하기까지 남은 짧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위기론의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정작 위기론은 이미 총선에서 사용했기에 대선에서까지 쓸 수는 없게 된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또한 천막당사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천막당사의 교훈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즉사필생의 각오로 임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 진짜 교훈이란, 아무리 한때 확실하게 쇄신을 해놔도 시간이 지나 타성에 젖어 개혁을 주저하게 되면 다시 19대 총선 직전의 위기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선 레이스를 앞둔 새누리당 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확보한 과반수를 버리더라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는 이미지와 함께 의혹에는 타협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쳐낸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대권 행보를 가속해야 할 새누리당 전체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쌓여왔던 부정부패의 이미지를 벗겨 내려면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쇄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반수를 포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포기하는 것은 많아야 3석이다. 보궐선거로 다시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3석을 보유하고 있는 자유선진당과의 연대도 가능하다. 특히 타협 없는 쇄신을 했다는 이미지는 당장 이어질 보궐선거에서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겨우 3석이 아니라 자그마치 과반을 포기하면서까지 쇄신을 했다는 홍보로써 한나라당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일신하는데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버림으로써 얻는 것이 분명 있는 셈이다.

3석을 버려 더 큰 승리로의 추진력을 얻을 것인가, 모처럼 얻은 과반 의석을 지키며 다른 승리 방안을 강구할 것인가.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새누리당으로서는 단순히 관련자들을 당에서 배제함으로써 손쉽게 의혹과 거리를 둘 수도 있지만, 가장 먼저는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사실관계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의혹에만 휘둘려 심판하는 것은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시된 의혹의 사실 여부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억 속에 묻혀갔던 이전의 수많은 정치적 의혹들처럼, 이번에도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며 불분명한 태도로 대응하다 넘어가면 근본적 쇄신을 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약속은 이전부터 반복돼온 수많은 정치적 구호들과 다르지 않은 취급을 받으리라는 점이다. 국민은 새누리당이 한나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