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려

[조은뉴스=권경렬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겸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시고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성재 이동휘 선생 77주기 추모식'이 31일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회장 유준형) 주관으로 열린다.

이 날 추모식은 윤두섭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원, 하빈이씨 종친회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기념사업회장 식사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등으로 진행되며, 추모식에 이어 위패가 모셔진 충열대 무후선열제단을 참배할 계획이다.

이동휘 선생(1873. 6.20 ~ 1935. 1.31)은 함남 단천에서 출생, 1899년 한성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2년부터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활동했다. 1906년 계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군직을 사임한 뒤 강화도에 보창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대한자강회 결성에도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교육과 구국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08년 서북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피체돼 황해도 무의도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고, 1912년 유배지를 탈출, 북간도로 망명해 국자가(局子街) 소영자(小營子)에서 김립ㆍ계봉우 등과 광성학교를 설립해 지속적으로 민족주의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거점을 옮긴 후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新韓村)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에 가담해 이상설, 이갑,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투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1914년에는 중국 왕청현 라자우거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大甸武官學校)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3․1운동 직후 블라디보스톡에서 문창범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고, '대한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동녕현에 독립군을 지휘할 임시군집부를 설치해 독립군 양성에 강한 추진력을 보였으며, 1919년 8월말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및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하여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할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그는 1921년 이후 국무총리직을 사임한 후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전력했으며, 1935년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62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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