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전선에 활로를 되찾는 기폭제 역할


[조은뉴스=권경렬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이봉창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식」이 8일(일) 11시에 백범기념관에서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다고 6일 밝혔다.

이날 기념식은 정양성 국가보훈처 차장, 박유철 광복회장, 김신 백범기념관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일반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그린 연극 “나는 지금 희망을 던진다” 공연후, 약사보고,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에 이어 보훈처 차장 · 광복회장의 기념사, 헌화, 기념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이봉창의사 의거(1932. 1. 8)」는 당시 침체 상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전선에 활로를 되찾는 기폭제가 되었다.

거사를 앞두고 태극기 앞에서 양손에 폭탄을 들고 죽음을 초월한 웃음을 지어 보이신 그 거룩한 모습은 우리 후손들에게 애국혼의 표상이 되고 있다.

정 차장은 기념사를 통하여 젊은이들의 국가관을 굳건히 되살려, 나라를 위한 희생이 존경받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보훈정책을 전개하겠다고 강조할 계획이다.

다음은 국가보훈처에서 배포한 이봉창 의사 공적 자료

이봉창 의사 공적

서울에서 출생한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1931년 1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난 후, 일본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운 후 거사를 계획․준비하였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931년 12월 17일 김구 단장의 전송을 받으며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동경으로 출발하였다.

12월말 동경에 도착한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대대목(大大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다.

현장에서 붙잡힌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동경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시곡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하셨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그 대상이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 해 놓은 일왕이었고, 거사 장소가 적의 심장부인 동경이었다는 점에서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으나 그 의미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일제 강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신념과 의지를 일깨워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전선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였으며, 동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46년 김구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하여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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