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 손에 혼을 담아 - 김태규 匠人

[(부산)조은뉴스=조원진 기자]  부산 사하구 장림동. 26일 오전 11시. 잠겨있는 문밖에서도 야구배트를 만드는 원목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4층 계단을 올라오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오래기다리셨죠’라는 말에 돌아보니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김태규(65) 장인이 보인다. 그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작업실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SK 포수인 ‘정상호’ 선수의 배번이 적혀있는 방망이였다. 그는 “정상호는 힘이 장사다. 900g 방망이를 매달 10자루씩 가져간다.”고 말하며 방망이를 보여준다. 무겁다. 그리고 두 손으로 원목을 깍아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내가 만든 배트 중 가장 무거운 방망이는 한국에서 뛰다가 일본으로 간 우즈꺼다. 무려 1005g이나 나가는 방망이를 주문해 사용했다. 그리고 이승엽 선수다. 그는 950g으로 국내선수들 중 가장 무거운 배트를 사용했다”

“나의 방망이를 잡은 선수들이 잘 되서 나도 좋아”

사실 김태규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언제나 선수들과 함께였다. MBC청룡 백인천, 홈런왕 김봉연, 이지환, 이승엽, 우즈, 심정수, 임수혁, 김재박, 이광은, 마해영, 김광수, 박정태, 전준호 등 지도자급 또는 살아있는 야구의 역사로 불리는 선수들은 죄다 그의 배트를 썼다. 현역롯데선수인 전준우, 황재균 그리고 가르시아도. “조만간 가르시아가 나에게 주문하러 온다면 내년에도 잔류하는 것이고 오지 않는다면 맥시코로 떠났다고 보면 된다”

“여기는 왜 와. 요즘 깨끗하게 대량으로 찍어내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원목과 톱밥이 가득 쌓여있는 그의 작업장. 왠지 톱밥이 프로야구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30평정도 되는 이곳은 방망이를 만드는 작업실이 전부다. 쉴 수 있는 간이시설은 2평 남짓. 그에게 방망이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제트스포츠 한국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당시 그는 일본으로 갔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2년 전인 1980년에 일본 본사로 연수 가서 명인들로부터 방망이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로지 자동화기계가 아닌 두 손으로 만드는 법만을 배웠다. 남들이 자동화설비로 깨끗한 환경에서 대량생산을 하는 지금, 그는 부르튼 두 손으로 40년 시간동안 나무를 깎았고 40년의 세월도 깎았다.


“선수들에게 서로 같은 방망이는 없어”

그가 배트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원목을 2500~2600g사이로 자른 후 공이 맞는 부분은 63~65mm, 손잡이는 23mm으로 맞춘다. 당연히 손으로 지름을 측정해가며 작업을 한다. 각 선수마다 원하는 무게로 맞춰주니 선수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라며 “장타자면 배트를 끝까지 길게 잡고 칠 수 있게 같은 무게라도 무게 중심을 머리부분으로, 단타자는 짧게 잡고 간결하게 칠 수 있게 조금 낮게 깎는다.” 그가 만들면 각각의 선수들이 같은 배트로 스윙하는 일은 없다. 그것은 선수들의 취향과 힘에 맞춰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선수가 주문한 배트는 10 자루 또는 100 자루라도 5g의 오차도 없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작업실에는 전자저울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손으로 길이와 무게를 측정한다.


“남 보기는 천해도 신경쓰지 않아”

언제나 방망이를 깎으니 그의 옷에는 톱밥이 붙어 있지 않은 날이 없다. 모르는 사람은 이상한 눈으로 볼 수 있을터.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큰 돈을 벌 욕심따위는 없어. 하지만 방망이 하나하나 제대로 만들고 싶고,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만들고 싶어.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지만 선수에게 가장 알맞은 방망이를 만들어 줄 수 있어”라며 “이 두 손으로 만든 방망이로 홈런과 안타를 치면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하지만 야구공에 잘못 맞아서 부러질 때면 마음이 안 좋아”라고 말한다. 프로야구 600만 시대. 그가 만든 방망이는 600만 관중에게 울고 웃는 추억을 선사한다.

프로야구선수들에게 인정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태규 匠人. 현재 제트, 골드, 유니크 스포츠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그는 기계의 힘이 아닌 자신의 부르튼 손으로 제 2의 도약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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