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내막] 탈북자들이 말하는 女간첩 사건의 진실

최근 탈북자로 위장, 군 장교 등에게 접근해 탈북자 정보와 군사기밀을 빼내고 이를 북한에 유출시킨 30대 여간첩이 붙잡혔다. 공안당국에 체포돼 지난 8월27일 구속 기소된 한국판 마타하리(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여성 스파이로 활동) 원정화(34)는 군 장교 등을 상대로 성(性) 로비를 하는 등 남한에서 7년여 간 간첩활동을 벌여왔다.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10여 년 간 뜸했던 간첩 검거 작업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촉발됨에 따라 국가보안법 강화 등 공안정국 움직임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맞물려 일각에서는 지난 10년여 동안에도 간첩활동이 꾸준히 포착돼 왔지만 지난 정권에서 남북관계 등을 이유로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원정화와 같이 위장 탈북한 여간첩은 처음이 아니며 지금도 미모의 여간첩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직파간첩은 아니지만 탈북자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재입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간첩으로 포섭되는 경우도 있다는 등의 갖가지 주장이 제기되면서 ‘탈북자=간첩’이라는 인식이 탈북자 전체로까지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탈북위장 여간첩’ 사건을 두고 정부가 범불교대회를 희석시키려 했다는 ‘물타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내막>은 원정화 여간첩 사건의 전말과 이를 바라보는 탈북관련 단체들의 입장을 담아봤다. 

정광일 대표 “국가안전보위부가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수법 중의 하나는 ‘정보를 보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잘못될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것”

경기지방경찰청과 국군기무사령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지난 8월27일 위장탈북 후 국내에 들어와 탈북자 정보와 국가기밀 등을 북측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원정화를 구속 기소했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원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으로 파견된 후 2001년 11월 국가정보원에 탈북자로 위장자수, 2002년 10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14차례 중국으로 출국해 재중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 국내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지령을 수령했다.

2003년 남한정보기관과 연계된 남한사업가를 포섭하고 2004년 대북정보요원 2명 살해, 2005년 국정원, 하나원, 대성공사 위치 파악, 군 장교 포섭 후 탐지 및 중국유인에 관여했다. 또한 2006년도에는 군 안보강연을 다니며 군 장교 인적사항과 부대위치를 파악하고 남한 비전향장기수와 황장엽씨 등 안보강연을 하는 탈북자들을 파악했다. 이후 올해 5월에는 포섭된 황모 대위가 원씨에게 군 안보강사로 활동하는 탈북자 명단을 제공했다.

공안당국은 원씨가 일반 탈북 여성과 달리 중국에서 대북무역을 하고 젊은 군 장교들과 교제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 2005년부터 내사에 착수해 원씨가 이메일을 이용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남한의 군 관련 사항을 보고하는 정황을 포착, 7월15일 체포했다. 또한 원씨에게 탈북자 명단을 넘겨준 육군 모 부대 황모(27) 대위와 원씨의 양아버지로 활동하며 공작금을 제공, 간첩활동을 지시해온 김모(63)씨도 함께 구속돼 조사
를 받고 있다.

여간첩 사건 일파만파

여간첩 사건 발표 이후 탈북관련 단체들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과 함께 “원정화는 간첩일 뿐 간첩과 탈북자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이 탈북자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사)북한민주화운동본부 정광일 대표대리는 “이전 정권에도 원정화와 같은 간첩들은 존재했지만 남북관계 등을 이유로 잡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에 간첩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했지만 ‘뭐 그런 일을 가지고 그러느냐’며 난색을 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씨처럼 위장 탈북한 사례가 많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후 “이북에서도 잘살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왔겠나. 예전에 김동식 목사(2000년 북한 파견 공작원에 의해 납치)를 납치한 사람들의 친척 중에도 이곳에 온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여기에 올 이유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얘기했는데 수사도 안 되고 그냥 무마 되더라”고 말했다. 

정 대표 "간첩이 탈북자 정보를 북에 상시적으로 보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자들은 사진을 찍지 않아…한국으로 탈북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남은 가족들 핍박 받을 수 있기 때문"

정 대표는 중국에서 무역사업을 하다 간첩으로 몰려 1999년부터 2003년 4월까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는 바로 탈북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그는 “원정화나 김모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들을 뒤에서 조종, 지시했던 사람은 잘 알고 있다”며 “현 함경북도 보위부 윤창수 부부장이 모두 지휘했으며 나를 수용소에 잡아 가둔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는 30만~40만 명 정도가 수용돼 있으며 10개 구역(1구역 400여 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원씨의 주요 활동이 대남공작이 아닌 방첩활동인 데 대해서도 정 대표는 “보통 대남공작에 필요한 공작원을 키우려면 10년 정도 걸리는데 이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정보를 빼내도록 하고 있다”며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장항동 만포에는 탈북하다 잡힌 사람들, 재입북 과정에서 잡힌 사람들 등 이런 사람들을 데려가 훈련시키는 훈련소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간첩교육을 시켜 한국이나 중국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는 방첩임무를 전담하는 기관이었으나 1990년부터는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간첩을 파견해 탈북자 체포와 암살업무, 탈북자 정보 유출 등을 지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안전보위부가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수법 중의 하나는 ‘정보를 보내지 않으면 가족들이 잘못될 수 있다’고 위협, 협박하는 것”이라며 “원씨처럼 간첩이 탈북자 정보를 북에 상시적으로 보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원(북한이탈 주민지원 정착사무소)을 수료한 탈북자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자신이 한국으로 탈북한 사실이 북한에 알려질 경우 남은 가족들이 핍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번 간첩 사건은 우리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수사를 강화해서 간첩들의 활동을 막고 순수 탈북자들이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우리 또한 간첩을 색출하는 데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사)탈북자동지회 홍순경 회장은 지난 8월28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간첩이 파견된 시기는 2001년이라고 하는데 이때 당시 햇볕정책으로 해서 남북관계는 아주 좋은 상태였다고 남한에서는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이 시기에 북한이 간첩을 파견했다는 것은 이들의 본심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햇볕정책이 과연 옳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10년 만에 간첩사건이 불거진 데 대해 “지난 10년 간 간첩이 없을 수 없었고 이미 잠복된 간첩이나 또 파견된 간첩도 있다. 간첩들의 활동은 남한정부가 북한에 유화정책을 쓸수록 더 많이 다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간첩이 없어서가 아니라 간첩을 잡지 않고 묵과했다고 본다”며 “10년 만에 한 번 간첩을 잡은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중 상당수가 위장탈북한 간첩’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북한의 경제형편과 인권실상 등을 보더라도 북한은 탈북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진정하게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하려는 탈북자들이 대다수”라며 “간첩이 탈북자에게 많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경계했다.

홍 회장은 ‘원정화처럼 미모의 간첩 파견 등 북한의 남파간첩 유형이 변형됐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다. 예전에도 미인간첩을 파견해 고위층들을 회유하는 정책들을 실시해왔다”며 “신문에 63세의 고정간첩도 체포했다고 하는데 이런 많은 간첩들이 잠입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이나 국정원 등 모든 해당기관들이 철저히 감시하고 색출하는 작업을 본격화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천기원 목사 “북한정보원들 중국에서 선교사들 만나면 접근해서 정보를 교환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간첩 원정화가 남한 내 탈북자들을 살해할 목적도 있었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그는 “황장엽 선생과 김승민 자유북한방송 국장에 대한 위협이 여러 번 있었다”며 “지도급에 있는 황장엽 선생과 일부 사람들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으로서는 이런 귀중한 탈북자들의 재산을 잘 이용해서 대북정책에 잘 참착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첩은 탈북자와 별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안효덕 부장은 지난 정권에서 간첩사건을 묵과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지 않았다. 안 부장은 “DJ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때는 대북지원사업이 상당히 활발하고 북한과의 모든 채널이 가동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간첩사건이 발생하면 대북교류나 대북채널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명박 정부나 북한과의 관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앞 정권에서도 이런 부분들(간첩활동)을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했기 때문에 간첩 검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여간첩 사건이 탈북자 사회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안 부장은 “탈북자들도 엄연히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북한에서 왔다는 것만 빼고는 여느 국민처럼 자유롭게 중국 등 3국을 방문하고 있다”며 “전체 탈북자 수가 14000여 명인데 이들을 모두 간첩으로 간주해 북한 정보원들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등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여간첩 사건으로 인해 많은 탈북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원정화라는 한 사람 때문에 탈북자 전체가 매도 당하고 있는 데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남한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 안 부장은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되다 보니 간첩사건 하나로 인해 탈북자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탈북자에 대한 인식전환과 지원 및 정착제도상의 문제점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사)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이제까지 간첩들은 꾸준히 활동해 왔고 탈북자들도 중국이나 북한을 왕래할 수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간첩활동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탈북자들 가운데 3000여 명 정도가 이미 북한이나 중국, 영국 등으로 빠져나갔고 원정화처럼 직파간첩은 아니지만 탈북자가 재입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간첩으로 포섭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실제로 선교사들도 중국에서 북한정보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접근해 정보를 교환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탈북자들은 위축되거나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으로 남한 사람들이 농담 삼아 ‘너 혹시 간첩 아니냐’는 얘기를 던질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 사건을 다분히 간첩사건 하나로만 볼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정착 시스템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바랬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시스템을 비교해 “한국은 정착비와 지원금을 주는 것으로 끝이지만 미국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지원해 주고 이들이 자립해 살 수 있도록 직장을 알선해 주고 있다.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이들이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며 난민 시스템 구축을 촉구하기도 했다./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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