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조은뉴스=온라인뉴스팀]  “아직도 고종을 무능하고 나약한 군주로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고종은 이곳에서 독립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과거 대한제국이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터를 둘러보실 겁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영해 해설사는 문화재청에서 복원한 덕수궁 중명전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중명전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중명전은 잊힌 나라의 한 부분이지만,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곳”이라고 당부했다.


복원된 덕수궁 중명전, 전시실로 개방
문화재청은 서울 중구에 있는 덕수궁 중명전의 원형을 복원해 8월 29일부터 공개했다. 이곳은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체결하고, 1907년 고종이 이준 등 헤이그 밀사에게 밀지를 전달한 역사적인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1976년 민간으로 넘어간 뒤 주차장으로 방치됐다. 2006년 이곳을 인수한 문화재청은 헤이그 밀사 파견 100주년인 2007년 말 복원에 들어갔다.

문화재청 궁릉문화재과 고정주 담당자는 “1925년 화재로 불탄 뒤 중명전은 벽체만 남아 있었다”며 “중요한 역사 현장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어 복원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중명전을 최초 건립 당시 형태로 복원하는데 주력했다. 더불어 역사현장체험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중명전 내부에 상설전시장과 역사체험교육 공간을 조성했다.

중명전 전시관의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 강임산 사무국장은 “중명전은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였으나 일제에 훼손당하고 민간에 팔리기도 했다”이라며 “국민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대한제국의 저항과 오욕의 역사 현장”이라고 말했다.

50분간 느끼는 역사 현장
현재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선 매일 6회, 회당 25명씩 중명전 무료 관람을 진행하고 있다. 덕수궁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 사전예약자 20명과 현장 접수자 5명이 관광안내사와 함께 50분 간 관람을 한다.


덕수궁 중명전 1층은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헤이그 특사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네 주제의 전시실로 돼 있었다.

김 해설사는 “특히 2전시실은 을사오적이 한 자리에 모여 을사늑약을 체결한 회의장소로 추정하고 있는 곳”이라며 “바로 이 장소에서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고 말했다.

3전시실에서는 을사늑약 체결 이후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김 해설사는 “이곳에선 국제사회에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는 데 힘쓴 고종황제의 노력을 확인해보라”며 고종황제가 1906년 1월 영국 트리뷴지의 스토리 기자에게 전달한 을사늑약 무효 친서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고종황제가 처음부터 인허하지 않았으며 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친서는 트리뷴지에 원문 그대로 실리기도 했다.

김 해설사는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국제사회에 친서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해외 의병활동에 군자금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알고 보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역시 고종황제가 배후로 있었다고 한다.

김 해설사는 “국민 대다수가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고종황제가 무능력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당시 고종황제는 독립을 위해 힘썼다”고 강조했다.

대한제국 국가 들으며 100년 전 기억하기
2층은 고종 집무공간이었다. 바로 이 공간이 1904년 경복궁 화재로 피신한 고종이 머물던 곳이었다. 고종황제를 알현하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던 곳이다. 문화재청에선 이곳을 복원하고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2층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고종황제 어진이었다. 붉은색 곤룡포가 아닌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옷을 입은 고종황제를 담은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김 해설사는 관람객에게 “모두 자리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이 음악을 들어 보세요”라며 음악 하나를 틀었다. 해설사가 들려준 음악은 대한제국 국가였다. 관람객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100년 전 대한제국의 국가를 들었다.

유영지씨(31·여)는 “슬픈 역사의 장소에서 들은 까닭인지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국가”라며 “마치 대한제국의 존재를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고종황제이 사용한 옥새 복원품도 볼 수 있었다. 이 옥새는 높이 4.8㎝, 가로 5.3㎝, 세로 5.3㎝으로 보통 박물관에서 보던 옥새보다 크기가 작았는데,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김 해설사는 “외교권 박탈 이후 일제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자, 고종은 비밀리에 사용하기 위해 작은 옥새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라며 “고종황제는 이 옥새를 가지고 대한제국 독립을 위한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암울했던 역사 현장을 기억하며
온 가족이 함께 이곳을방문한 최승훈군(12)은 “아빠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고 해서 따라왔는데,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 현장을 이렇게 둘러보니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최재혁씨(41)는 “암울한 역사 현장에서 다시 한 번 고종황제의 이름을 되새길 수 있었다”며 “이번 중명전 복원을 계기로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한 경운궁 등 황제 손길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들이 재조명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궁릉문화재과 고 담당자는 “근대건축물을 보면,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훼손한 부분이 많아 이를 복원하고 있다”며 “2009년부터는 근대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을 복원하고 있는데, 2012년 10월에 제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강 사무국장은 “중명전 복원 공개를 계기로 2011년엔 덕수궁 중명전을 거점으로 정동일대 박물관과 전시관, 근대문화유산 등 역사문화자원을 묶어 국민에게 알리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통 고종을 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선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진짜 고종’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덕수궁 중명전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위치를 다시 되새겼으면 좋겠다. [정책포털 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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