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조은뉴스=온라인뉴스팀]  “연극을 통해 남의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제 삶도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연극에는 또 새로운 인생을 도전하게 하는 열정이 숨어 있습니다.”

8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포럼연극 ‘잠깐, 백여사를 도와주세요’에 출연한 이옥선 어르신(64·여)의 이야기다.

어르신 예술교육 프로젝트
이 연극은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꿈꾸는 인생의 원더풀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무대로 어르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출연해 만든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어르신들을 위한 특성화 예술교육 전략 프로젝트다. 노인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기고 누구나 예술가가 되어보고 자신의 가능성과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재단의 안호상 대표이사는 “지금까지 노인들은 나이 들고 나약한 존재로서 단순히 예술을 구경하는 이들이었지만,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이제는 예술을 당당히 즐기고 표현하는 예술의 생산자로 등장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어르신들이 살아가는데 예술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한 모습으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극에는 재단측이 서울의 자치구에서 운영해온 ‘꿈꾸는 청춘예술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어르신 8명이 배우로 출연했다. 최고령은 82세였다. 이들은 47일간 연습해 이번 공연을 올렸다. 또 2박3일간의 남양주 종합촬영소 캠프에서 연기 기초이론과 실기를 배우기도 했다. 본격적인 연습에선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 등의 지도를 받았다.

어르신들은 이번 연극을 ‘포럼연극’으로 선보였다. 포럼연극이란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면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연극의 줄거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다른 관객들은 놓칠 수 있는 세상과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르신 연기를 지도한 프락시스 김병주 대표는 “연극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노인의 소외현상 등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려면 포럼연극이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포럼연극이 토론의 형식을 빌리는 연극이기 때문이다.

노인문제로 관객 호응 이끌어내
극의 제목은 ‘잠깐, 백여사를 도와주세요’로 노인문제를 관객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노인문제를 연극의 주제로 제안한 권호영 어르신(70)은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비단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 사회의 관심도 크다”면서 “출연한 어르신 배우들도 공감하는 주제이기에 보다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여기서 백은숙 여사는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마땅한 역할도 없이 외롭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인생황혼기에 접어든 우리 시대 나이든 어머니상이다.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어릴 때 친구의 꼬임에 빠져 건강식품업체 홍보관에 자주 들린다. 거기서 색다른 분위기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이를 잊은 듯 기쁘고 즐겁게 보낸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식품을 팔기위한 홍보관의 속임수이자 작전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른다.

결국 홍보관 직원들이 강매한 1박스 300만원에 달하는 건강식품을 받아든 백여사는 홍보관 직원의 입금독촉과 협박에 시달리며 그만 절망에 빠지고 만다.


연극이 끝나자 진행자가 관객에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백여사를 도울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다.

6,70대로 보이는 몇몇 관객은 연극의 상황과 전개가 맘에 안든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백 여사의 문제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식만을 위해 희생한 삶의 결과라는 주장부터 홍보관을 사기죄로 고발해 응징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관객의 반응은 다양했다.

배우와 관객이 토론하며 만드는 연극
백 여사를 돕겠다며 몇 사람의 관객이 무대에 올랐다. 먼저 60대 중반의 한 여성 관객은 백 여사 친구 입장에서 “홍보관 직원과 팀장이순진한 노인을 상대로 물건을 강매했다"고 주장했다. 그 관객은 결국 한 박스 30만원에 불과한 물건을 속여 판 홍보관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또 다른 60대 여성 관객은 “백여사가 아들 몰래 건강식품을 샀다”면서 “우선 백여사의 고민부터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과 며느리를 직접 불러 “백 여사가 자기보다는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건강식품을 사게 됐다”고 알려, 아들이 어머니의 실수를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연극으로 청춘을 되찾았어요”
어르신 배우들은 연극을 하면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홍보관 직원역의 이흥수 어르신(74)은 “마음속에 예술적 감성을 안고 살면서도 표현할 길이 없었다”면서 “연극을 통해 예전에 느끼지 못한 젊음과 청춘을 다시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여사 친구로 출연한 이승주 어르신(74·여)은 “연극을 연습하면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며 “연극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내 나이에 춤추고 연기한다는 게 쑥스러운 도전이었지만 무대공연을 마치고 나니 내 자신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느낌은 출연한 대부분의 어르신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관객들도 이 같은 어르신의 모습이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관악중앙사회복지관 연극반이라는 김상숙 어르신(77·여)은 “연극배우들이 자신들의 열정과 숨겨진 재능을 맘껏 표현해 연기가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함께 온 육정옥 어르신(75·여)도 “출연자들이 연극을 즐기면서 유감없이 끼를 발휘하는 걸 보고 매우 부러웠다”고 말했다.


연극반 중 막내라는 최금자 어르신(70·여)은 “연극은 열정이 가장 많이 필요한 예술분야”라며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은 열정에다 연습도 상당히 많이 해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프락시스 김병주 대표는 “아직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포럼연극을 전문적으로 훈련된 배우가 아닌 평범한 어르신들이 처음 시도한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극에서 보여준 어르신들의 열정과 숨겨진 재능 덕택에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연극’의 가치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원더풀 페스티벌에는 포럼연극 외에도 다양한 창작공연이 있었다. 청춘은 나이가 아닌 가슴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 노인들의 라디오쇼, 페스티벌 전 출연진의 피날레장면, 한 어르신의 열정적인 무용공연(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예술에 새로운 인생을 담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포럼연극 외에도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무용공연을 마련했다. 특히 영화 세 편은 어르신들이 직접 대본작업과 연기, 연출까지 맡은 것으로, 우리 시대의 당당한 노인상을 그렸다.

재단의 김현자 사업담당은 “이번 페스티벌의 성과를 기반으로 재단은 어르신들이 예술로 소통하는 인생의 2막을 열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교육을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페스티벌을 지켜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것을 재삼 확인했다. 예술교육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는 노인들이 이날 공연장에서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말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돌고 있다.

“열정은 나이에 비례해 커지는 행복 바이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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