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조은뉴스=온라인뉴스팀]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이 원정 첫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들끓은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도 장애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월드컵의 우리나라 경기를 빠지지 않고 응원했다는 소아마비 장애인 채희준씨(40·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활동가)를 만나봤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응원하셨다고요?
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이네요. 이번 남아공월드컵말고도 2002년부터 꾸준히 거리응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월드컵 열기는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여의도, 신촌, 서울광장, 한강공원, 삼성역 등지에서 거리응원전이 활발히 열렸죠. 저는 그리스전부터 장애우들10여명과 함께 서울광장에서 거리응원을 했습니다.

2002년도 한일월드컵 당시 응원을 하다가 붉은악마 한 명을 만났어요. 바로 옆에 앉아있던 붉은악마 회원을 보며 ‘나도 가입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인이라고 붉은악마 회원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때부터 공식 붉은악마가 됐습니다. 장애우가 붉은악마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지만, 제가 몸은 좀 불편하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은 비장애인 못지않습니다.

거리응원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리응원전만의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젠 습관이 되서 응원을 나오지 않을 수도 없고요. 구호에 맞춰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할 때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요. 한 골이라도 들어가면 낯선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는 물론, 포옹까지 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거리 응원을 할 때면 비장애인, 장애인 구분 없이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우리편 골이 터지면 동시에 환호를 하고, 상대편이 우리측 골문을 두드리면 여지없이 탄식하는 소리가 쏟아집니다. 거기엔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없어요. 그저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국민이 되어 하나로 뭉치는 것이죠. 응원을 할 때면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도 잊곤 해요. 비장애인 친구들도 함께 응원하는 동안 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을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응원을 하시면서 불편하셨던 점들도 있으시다고요?
장애인들은 소외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오면 다칠까봐 무서워 경기 시간 집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내고 있죠. 월드컵 응원의 뜨거운 열기를 브라운관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거지요. ‘세계인의 축제’, ‘지구인의 축제’라는 수식어가 붙는 월드컵 축제지만 거기에 장애인은 빠져있는 것 같아요.

거리응원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화장실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응원석과 화장실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죠.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가려면 응원하던 사람들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이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인이 드나들 틈도 없이 응원인파가 몰려 있는데 휠체어가 지나다니는 것은 고역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화장실 가려고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면 다 일어나 비켜줘야 하거든요. 장애인용 화장실이 따로 있긴 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협소했던 문제점도 있었죠.

시민들의 베려도 바라신다고요?
서울시에선 그리스전 때부터 장애인들을 위해 스크린 앞자리에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서서 경기를 관람할 수 없기 때문에 편의를 봐준 거지요. 그러나 이런 자리도 초반에만 괜찮습니다. 응원 인파가 몰리면 밀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비상사태가 벌어져도 움직임이 힘든 장애인들은 재빠르게 행동할 수가 없으니까요.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중증장애인 친구들도 함께 데리고 나갔기 때문에 더욱 노심초사합니다. ‘이러다 친구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베려가 너무 부족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아랑곳없이 앞자리에 술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취객은 ‘애자’라며 장애우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아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현실적인 배려가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과 함께 응원하고 싶으시다고요?
예년에 비해 월드컵 응원 장소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장애인 화장실은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설치해줬거든요. 많이 발전한 거죠.

물론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응원에 참여할 엄두도 못내고 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에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장애인들이 응원하기 좋은 환경이 될 테니까요.


그는 “4년 후에도 꼭 거리응원을 할 것”이라며 “만약 4년 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면 축구공 모양으로 머리를 밀겠다”고 말했다.

4년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드컵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국민들의 아낌없는 응원, 붉은 티셔츠, 월드컵 응원녀 신드롬이다. 하지만 거기엔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도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응원하러 나온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 쓰레기까지 자발적으로 수거하는 모습을 보여 세계인을 놀랬다. 이런 국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월드컵을 함께 즐겼어야 할 장애인들에게 소원했던 것은 아닐까. [정책포털 정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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