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가 뭐야?”

[(서울)조은뉴스=온라인뉴스팀]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에 있는 청계문화관 입구에 걸린 '보이지 않는 전쟁, 삐라展' 현수막을 본 초등학생 어린이가 말했다. 곁에 있던 어린이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청계문화관에선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과 함께 8월 22일까지 '보이지 않는 전쟁, 삐라展'을 개최하고 있다.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회에선 실제 삐라 445점을 전시했다.


전쟁보다 치열했던 삐라공작
삐라는 ‘전달’을 잘못 사용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삐라를 ‘북한에서 날려 보내는 선전용 인쇄물’ 등을 뜻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6.25전쟁 당시엔 양측 모두 삐라를 뿌렸다. 당시 UN 군이 뿌린 삐라는 약 25억 장이라고 한다. 북한군이 뿌린 삐라는 3억 장에 달한다고 하니, 치열한 전쟁 동안 양측에서 28억 장의 삐라를 뿌린 셈이다.

삐라는 심리전의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상대 진영에 투항을 종용하거나 공포심을 유발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실제로 삐라를 보고 투항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삐라는 양측의 심리전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한다.

청계문화관의 강성희 큐레이터는 “이번 특별전은 한국전쟁의 한 단면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물 삐라를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삐라展을 통해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삐라 중에선 ‘안전통행증’이 눈길을 끌었다. 적군을 회유해 귀순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중공군이 발행한 안전통행증에는 ‘TOW SHONG(tóu xiáng, surrender)’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말로 하면‘투항’이다.

안전보장증을 가지고 있으면 ▲안전을 보장받고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으며 ▲고문 당하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계문화관의 강성희 학예연구사는 “실물 삐라를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시회를 소개했다. 청계문화관에는 하루 평균 350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삐라 줍던 기억나세요?
한 중년부부가 전시장을 찾았다. 뒷산에서 삐라를 주웠던 기억이 난다는 이상원씨(41)는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에는 한국전쟁 때 삐라를 회수해 학교나 경찰서로 가져가면 학용품으로 바꿔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전시된 삐라를 보며 부인과 함께 삐라에 얽힌 경험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그땐 삐라를 주워가면 연필이나 노트로 바꿔주기도 했다”며 “종이가 귀했던 때니까 화장실 휴지나 연습장으로 쓰기도 했는데, 전시회에 와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찾은 장동민씨(22)는 “이제 곧 입대를 하는데, 분단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겪을 당시 유년기를 보냈다는 한 어르신은 “전쟁을 터졌을 때 다섯 살이었다“고 말했다.

“세상은 점차 변하고 발달하는데 언제까지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우리세대가 죽기 전에 빨리 통일을 이뤄 더 이상 아픔이 후세에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위해 이 전시관은 꼭 필요하고, 상기해야 할 자료입니다.”

6.25를 모른다고요?
불로초등학교 4학년 이봉학군은 “한국전쟁 자세히는 모른다”며 “남한이랑 북한이랑 싸운 전쟁이란 것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군은 삐라가 ‘무섭다’고 말했다.

“삐라 속 사람들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전쟁이 나면 어떡하나’라고 걱정이 됐어요.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통일이 안 되면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니까요.”

초등학교 3학년 이재연군은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라며 “이번 주에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고 6.25 전쟁이 언제 터졌는지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군은 “6.25전쟁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학교에서 북한과 6.25에 대해 배운 적은 없다”며 “배웠다고 해도 피아노학원에서 ‘우리의 소원’이라는 곡을 배운 게 전부”라고 말했다.


청계문화관의 ‘삐라展’은 학교에서 분단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학습장이 되고 있었다.[정책포탈 정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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