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그리스 재정위기 지원방안 합의… 그리스, “자금 요청할 계획 아직 없어”

 

[조은뉴스=임시후 기자]   유로존 회원국들은 지난 3월25일 실무만찬으로 시작되는 이틀간의 EU 정상회의 직전에 이러한 내용의 그리스 지원방안을 공식발표했다.

국제사회에서 유로존의 신뢰도 하락을 우려해 그리스의 IMF행을 반대해 왔던 프랑스가 전격 수용하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EU 정상회의 개의 직전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IMF 개입+유로존 차관’ 병행안에 합의, 헤르만 판롬파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합의안을 제출한 것. 유로존 정상회의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마련한 합의안 초안을 원안 그대로 채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EU 정상회의 도중 16개 유로존 회원국 정상들이 따로 회동해 IMF의 개입을 수용하는 한편, 그리스에 차관을 제공할 때 시장금리를 밑도는 보조금 성격의 저리 이자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승인했다.

그리스 지원 놓고 유로존 의견 대립 팽배

‘분명한 지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IMF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던 그리스는 정작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를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지도자들이 이를 수용하려 하자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IMF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뼈를 깎는 재정개혁, 경제 체질개선 프로그램을 강요 등 다양한 요구 조건들이 따를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가 IMF 지원을 받는 것을 확정짓기에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 지원 3대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스가 더는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IMF가 그리스 구제에 동참하며 공동체 조약을 개정해서라도 재정건전성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추가 장치에 대해 논의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이러한 조건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리스로서는 높은 비용을 감내하면서 고사 직전까지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로 전략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지난 3월16일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회의를 열고 회원국과 그리스의 양자 계약을 통한 차관 제공과 양자 계약을 통한 그리스 국채 지급보증 등 두 가지 지원 방안을 집중 논의했었다.

당시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재무장관은 회의를 주재한 뒤 연 기자회견에서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지급보증 방식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 여유 있는 국가가 그리스에 차관을 제공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는 금융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요청했던 바는 합리적인 금리로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하는 (유로존의) 정치적 지원이었다”고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  

한편, 독일 신문 빌트는 이날 익명의 독일 정부 관리들을 인용, 만일 그리스 정부가 4월에 만기도래하는 국채상환에 실패할 경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가 긴급 구제기관으로 IMF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정치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IMF가 그리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그리스 자체로부터 턴어라운드, 경제호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U 지원보다 자구노력으로 그리스가 먼저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긴축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일 내에서는 그리스가 IMF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당인 독일 기민당의 마이클 마이스터 의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필요하다면 누가 그리스의 자본시장 접근을 재개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며 “IMF 외에 이 수단을 갖고 있는 존재는 없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이 그리스 구제안을 밀어붙이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는 등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로존 지원안 합의, ‘막다른 골목’에선 IMF 지원 필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유로존 16개국이 합의한 그리스 지원안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파판드레우 총리는 지금으로선 유로존이 합의한 지원 체계에 따라 자금을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유로존 회원국인 그리스는 (재정위기로부터) 안전해졌으며 유럽 또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면서 “오늘 우리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고 환영했다.  

유로존 회원국과 IMF는 그리스가 더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 지원에 나선다. 그리스가 필요로 할 때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 ‘더는 자본시장에 기댈 수 없다’라고 판단하면 16개 유로존 국가의 만장일치로 메커니즘이 가동된다.

유로존 회원국은 ECB 지분율을 벤치마크로 해 그리스가 요구하는 자금을 배분,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게 되며 ‘보조금’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차관에 적용되는 이자는 적정 시장금리보다 낮을 수 없다. 유로존 정상들은 전날 그리스가 더 이상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나머지 15개 유로존 회원국과 IMF가 시장금리 수준의 이자로 그리스에 차관을 제공한다는 데 합의했다.  

IMF가 그리스 지원에 쓸 수 있는 돈은 최대 100억 유로로 추정된다. IMF가 지원을 결정하면 4, 5월에 갚아야 할 부채만 200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는 구제금융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된다.

합의안이 나왔기 때문에 상당수 채권자는 그리스 국채의 만기를 연장해 줄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 정부는 향후 국채 금리가 유로존 지원 합의 덕분에 하락세로 들어설 경우 자금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EU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유로화의 가치가 점점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일이 유럽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렸다”
EU가 그리스를 직접 지원하지 않고 IMF를 지원의 전면에 내세운 데는 독일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독일은 그동안 EU가 공동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3월21일 독일 국민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 5명 중 3명은 지원에 반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 지원을 반대해 온 자국민들에게 면이 섰다. 또 그리스의 긴축 정책으로 경기가 침체되면 그 여파가 유럽 전체에 미칠 수 있다. 특히 역내 간 무역이 활발한 독일도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스 지원이 실행될 경우 독일은 가장 많은 부담(27%)을 진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EU의 안정·성장 협약을 충족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온 독일 국민 입장에선 자신의 세금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걸 용인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독일이 유럽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EU 창설의 주역인 독일과 프랑스는 EU 창설 때부터 입장이 달랐다. 독일은 모든 EU 국가가 안정·성장 협약을 견실히 이행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부실한 프랑스는 그리스 등 재정 건전성이 낮은 국가도 EU에 포함시켜 독일의 헤게모니를 견제하길 원했다.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원은 “그리스 문제를 통해 앞으로 다른 남유럽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차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 전체로 보자면 ‘성장이냐 복지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재무부를 만들자는 제안도 제기됐다.

유로존 경제 불안정한 이유는 독일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

그리스 재정위기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져 지난 2월에 절정에 달하자 EU는 그리스 재정위기와 관련해 역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망신과 이에 뒤따를 유로화에 대한 신뢰도 저하를 우려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를 방관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 빠졌다.

지난 2월12일 헤르만 판롬파위 상임의장이 처음 소집한 EU 긴급 정상회의에서부터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시 정상회의에서는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른 회원국이 지원하는 문제와 관련해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으며 판롬파위 상임의장은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유로그룹)와 EU 재무장관회의(경제·재무이사회.ECOFIN)에 세부계획 마련을 요청했다.  

이후 그리스 재정위기는 정점을 지나 다소 진정되는 국면을 맞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재정적자 해소방안에 노조가 총파업으로 맞서면서 좀처럼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유로존의 위기감이 거듭 불거졌다. 상황이 이러자 독일과 프랑스는 차관제공, 채무 지급보증 방안 등을 거론, 200억~250억 유로라는 구체적인 지원규모까지 언급되었다.

이에 따라 3월15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는 구체적인 지원방안과 규모에 합의가 도출되는 듯 했으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한 달 전 긴급 정상회의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14일 “그리스 정부가 재정적자를 은폐하기 위해 월가의 대형은행과 짜고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적자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고 현재의 위기상황으로 확산된 것”이라고 보도, 미국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가 그리스 정부의 재정위기에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체이스가 파생금융 기법을 활용해 그리스 정부가 눈에 띄지 않게 부채를 늘리도록 기여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유로존 경제가 불안정한 이유는 독일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 때문”이라며 독일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독일은 지난해 수출이 1950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역흑자는 1,361억 유로를 기록했다.

 한편, 미국 게리실링&코의 대표인 게리 실링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서서히 난파하는 동안 이 지역에서 재정위기를 맞는 다음 나라는 스페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토모미쓰이그룹 산하 일본연구소(JRI)의 마키타 다케시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EU는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며 “이것이 유로 신뢰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16개국 정상들은 그리스 사태와 같은 재정적자 위기가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집행위, 회원국 태스크포스, EU 이사회 순번의장국, ECB와 협력해 엄격한 재정건전성 규정 및 관리·감독 시스템을 연말까지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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