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에 맞선 판사, 변호사로 변신하다

[조은뉴스=박진호 기자]   지난해 ‘촛불 야간집회 참가자 첫 무죄 판결’로 용기 있는 법조인의 표상으로 회자되며 이슈의 주인공 떠올랐던 이제식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변호사로 옷을 갈아입고 지난 2월 25일 첫 업무에 들어갔다.

이 변호사는 굵직굵직한 대형로펌이 아닌 개인사무실을 선택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열망에서다. 로펌에 적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의뢰인의 형편에 따라 수임료를 조정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그가 재건축 및 재개발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겠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활동하겠다는 이 변호사의 행보가 기대된다.

# 촛불 야간집회 첫 무죄 판결

이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판사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28일 촛불 야간집회 참가자에 대한 ‘집시법’ 공판에서 첫 무죄 판결을 선고했었다.

헌재 결정(2009년 9월24일) 이후 집시법 조항(10조와 23조 1호)을 잠정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 사건은 있었지만 잠정 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판결문에서 “형벌 법규로서 옥외집회 조항은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09년 9월24일 이미 위헌·무효임이 확인됐다고 봐야 한다”며 “처벌할 법규가 존재하지 않아 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당시 판결내용을 정리하면 2010년 7월1일부터는 이 조항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어차피 지금 유죄 선고를 해도 2010년 7월1일 이후 피고인이 재심 신청을 하면 유죄판결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금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데, 그래도 유죄 선고를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이 판결에 대한 반향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특히, 헌재가 야간 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10년 6월까지는 잠정적으로 현행법을 적용하도록 했음에도 하급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ㅎ언론사는 이 판결에 대해 “헌법적 혜안과 결단이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2009년 ‘최고의 판결’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판결을 시발점으로 촛불 야간집회 참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은 연이어 선고됐다.

#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이 변호사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 출신으로 석산초등학교와 고로중학교, 대구 심인고등학교, 한양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사학과와 법대를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선생님이 추천하는 서울대 사학과를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한양대 법대를 선택했다.

한양대 입학한 그는 대학으로부터 4년간의 대학생활과 2년간의 대학원 생활 동안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배움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 법대학장으로 재직하던 김기수 학장으로부터도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장님께선 유독 저를 예뻐해 주셨어요. 법조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만들어 주신 참 스승이시죠. 이외에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인복이 참 많은가 봐요.”

이 변호사는 1992년 여름 제대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김천에 위치한 직지사 운수암을 동량 삼아 공부에 매진했다. 1998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1999년 2차 합격에 이어 2002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했다.

36의 늦은 나이였던 탓에 변호사 개업으로 마음이 쏠렸지만 가족들의 설득으로 판사의 길을 선택했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특히, 다방면에 걸쳐 많은 경험과 지식, 노하우 등을 익힐 수 있었다. 민사, 형사, 행정, 신청, 가사 등 모든 분야의 재판을 섭렵하면서 진정한 법조인의 자질을 갖출 수 있었다.

이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이제는 변호사로서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판사 재직 당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다는 이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대학 입학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는가’ 하는 문제를 늘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그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1년에 단 한건을 수임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평가를 내릴 때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된다면 대학 강단에 서고 싶은 작은 꿈을 이루고 싶다”고 귀띔하면서, 이 사회에 일한 만큼의 대가가 충분히 지급되는 사회로 거듭나며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깃들길 바란다고 전했다.

PROFILE/연혁
  65.  9 경북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출생
  77 . 2 석산초등학교 졸업
  80 . 2 고로중학교 졸업
  83 . 2 심인고등학교 졸업
  87 . 2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법학사)
  90 . 2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석사 - 민사법)
  92 . 7 육군 제5사단 병장 제대
  99 . 11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02 . 1 제31기 사법연수원 수료
  02 . 2 제주지방법원 예비판사(민사, 형사, 행정, 신청, 가사)
  04 . 2 제주지방법원 배석판사(민사, 형사, 행정, 신청, 가사)
  06 . 2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단독판사(민사, 가사)
  09 . 2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판사(형사)
  10.  2 변호사(서울 서초구 서초동 1568-5 동일빌딩 4층)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