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박사의 아침

[조은뉴스(칼럼)=김동길 박사]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자면 가장 분통이 터지는 한 가지 사실이 중상과 모략입니다. 머리가 좋은 국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머리 좋은 놈들이 죄 없는 사람을 헐뜯고 모함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유능한 인재가 어디 한 둘입니까.

남이장군은 조국의 역사를 빛냈고, 또 더욱 빛낼 수 있는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문벌도 좋았습니다. 조선조 태종의 외손이었고 세조의 사랑을 넘치게 받은 장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남이장군에 대해 호감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비극은 그가 젊어서 읊은 시 한 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호탕한 그의 포부를 피력하였을 뿐인데 간사한 한 놈이 그의 시의 글자 한 자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놈이 그 머리를 옳게 썼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되었겠습니까.

장군의 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백두산의 돌은 내 칼을 갈아 달아 없어지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내 말을 먹여 마르게 하리라
사나이가 스므 살이 되어도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였다면
누가 그를 일커러 대장부라 하려

장군의 당당하고 활달한 기상이 잘 표현된 애국·충정의 훌륭한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어떤 간악한 놈이 장군을 모함하기 위하여 손질을 했습니다. 글자 한 자를 바꾸었습니다. 시의 셋째 줄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였다면”의 ‘평’자를 ‘얻을 득 자’로 바꿔치기 했습니다. 내용이 전혀 딴것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스물이 되었어도 나라를 제 손에 넣지 못했다면 후세에 누가 저를 대장부라 하겠느냐”라는 뜻으로 완전히 바뀐 겁니다.

신하의 입장이 아니라 이제 그는 역적의 처지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예종은 조사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남이의 목을 쳤습니다. 그 때 장군의 나이 스물 일곱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 사실을 생각만 해도 분함을 참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이 나라의 역사의 잘못된 부분입니다.

백전백승의 명장 이순신 장군도 모함에 걸려 두 번이나 “백의 종군 하여라”라는 명령을 받고 삼도수군통제사가 졸병이 되어 종군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면 <난중일기>에 “나는 죽고 싶다”고 적어놓았겠습니까. 그 중상과 모략 속에서 굴하지 않고 명량해전에서,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이 나라를 살리신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오늘도 한국인의 특기인 중상·모략은 이 땅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겠지요. 중상은 무엇이고 모략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하자면 “생사람 잡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한 번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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