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박사의 아침

[조은뉴스(칼럼)=김동길 박사]  옛날에는 시계가 매우 귀한 것이었는데 요새는 흔해빠진 것이 시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생기는 대로 주고 또 줘도 아직 나에게는 시계가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비교적 큰 탁상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밧데리는 끝이 나서 가진 않지만 내 서재에 늘 있습니다. 황금빛의 아주 잘생긴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왜 남에게 주지 않고 아직 갖고 있는가. 다이얼 흰 판대기에 적힌 두 줄의 글 때문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그리고 그 밑에는 ‘김대중·이희호’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하는’과 ‘으로’만 빼고는 모두 한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 시계를 갖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연락만 하면 언제라도 기쁜 마음으로 내어 주겠습니다마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까지는 내가 계속 간직하고, 그 글을 교훈삼아 나의 남은 생을 살겠습니다.

“세상에, 간 큰 사람도 있었구나. ‘행동하는 양심이라니!’”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곰백번 바뀐 뒤에, 이 시계의 다이얼에 적힌 글자를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나눠준 시계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면, 그때에는 인류는 “그렇지”할 것입니다. 물론 간디 본인은 그런 말로 자기를 표현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누가 ‘행동하는 양심’인가? 자기 자신의 입으로는 떨려서 차마 못할 말이고,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다 알게 되는 것이니, 세속의 아들·딸들이여, 제발 조급하지 마시오. 세월가면 젊음도 가고, 미인도 가고, 재벌도 가고, 권문세도도 가고, 그리고 남는 것은 ‘진실’ 하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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