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대연합은 ´진보대연합´ 北 지령 이행, 김대중 강기갑 문국현 정세균 도피처

김대중은 누구인가?

1997년 11월 김대중이《김일성의 공작금 20만 $》을 받았다는 조총련부의장 출신 北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부위원장 겸 사민당 위원장 김병식 편지와 2000년 12월 일본 시사 잡지 문예춘추가 폭로한 1999년 김정일 육성녹음 내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김대중 미스테리는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1992년 12월 18일 제 14대 대선에서 숙적 김영삼에게 패배한 김대중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직후인 1993년 3월 어느 날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국민을 상대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정계를 영원히 은퇴 하겠다."는 고별사를 남기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던 김대중이 1년만인 1994년 3월 <북핵문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 느닷없이 귀국하여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로부터 영구은퇴 약속>을 뒤집고 국민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뻔뻔한 대거리를 던지면서 <협잡정치 신장개업>을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해설´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가에게 있어서 명예와 도덕성이 생명이며 도덕의 원천이 <정직과 신뢰>라고 할 때 이를 훼손해가면서 까지 <할 말 없고 면목 없는 정치재개>를 선언토록 압박한 실체는 무엇일까?

1994년 3월 귀국과 1995년 7월 김대중의 정치재개는 흔히 말하는 ´김대중의 恨=호남의 恨´을 풀기 위해서라고 볼 수는 없다.

1994년 김일성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위장조직´으로 <아태평화위원회>를 만듦과 동시적으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어떤 단초가 있으리라고 짐작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사코 ´북풍음해´라고 주장 하던, 1992년 12월대선 전후 김대중 주변에서 벌어진 간첩 서경원 과 문익환, 황석영 밀입북 사건 말고도 ´중부지역당 거물간첩´ 이선실 사건, 1997년 8월 오익제 월북 및 12월 편지사건 등 석연치 않은 사건의 연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정치인의 생명과도 같은 <도덕성의 기반이요 국민신뢰의 밑바탕인 대국민 약속>을 뒤집어엎어야 할 만큼 절박한 무엇은 국민으로부터도 호남으로부터도 김대중 자신의 대권욕으로부터도 아닌 《제3의 압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종》때문이었으리라고 풀이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특히 김대중이 영국에서 서둘러서 귀국한 1994년 3월은 북핵문제로 한반도에 ´戰雲´이 감돌던 《김일성의 위기》였으며 그해 7월 8일 김일성이 급사함으로서 北의 김정일은 《체제붕괴에 직면》하여 안팎으로부터의 도움이 절실했던 시기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생 거짓말을 못해 보아서 恨이라고 하는 걸어 다니는 양심(兩心=慾心≠良心) 김대중은 하늘같은 국민을 상대로 눈물을 흘리면서 한 <정치 영구은퇴> 약속을 팽개치고 1995년 7월 정치재개를 선포하면서 훗날 ´옷로비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새천년민주당´으로 신장개업하는 치욕을 당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김대중 무엇에 쫓기고 있나?

2000년 6월 15일 오후 김정일과 6.15선언을 하고 돌아 온 김대중이 "이 땅에 전쟁은 없다." 고 말 한지 만 2년 2주일 뒤인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NLL을 침범한 김정일 해적선이 아군 경비정 참수리 호를 기습포격으로 격침시킨 해전에서 대한민국 국군 6명이 전사하는《전쟁》이 발발 하여 김대중이야말로 대국민 안보협잡꾼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김대중이 도대체 무엇에 쫓기기에 "김정일 핵실험을 미국 탓"이라고 강변하고 촛불폭동을 ´아테네 이후 직접민주주의´라고 선동하는가하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을 저지하기 위해서 ´민노, 민주와 (친북)시민단체로 민주대연합´을 결성하자며 노골적으로 《내란을 선동》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김대중이 주장하는 ´민주대연합´이란 아무리 ´민주´로 위장을 해도 2006년 1월 1일 신년사와 2006년 5월 10일 민민전을 통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과 민노당을 중심으로 반보수 진보(친북)대연합>을 결성하여 <反 한나라당 투쟁>에 나서라고 한 김정일 지령 이행에 뒤 늦게 쫓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대중 내란죄로 처단해야

우리 형법 제87조(內亂)에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 한 수괴(首魁)는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형법 제91조(國憲紊亂)에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과 "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27일 김대중이 평양에서 노동당 외곽단체에 불과 한 사회민주당 김영대와 ´會合´하고 돌아 온 촛불폭동 주동자 강기갑을 만나 "국민은 역사마다 독재정권을 좌절시켰다"며 "민주당과 민노당, 시민사회단체 등이 손을 잡고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에 나선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반체제투쟁을 선동 한 것은 명백한 내란음모로 볼 수밖에 없다.

한편, 민노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 야3당은 김대중의 주문에 즉각 호응하여 오는 1일 6.15선언 및 10.4 선언의 이행을 골자로 하는 ´남북긴장고조를 우려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반정부반체제 연합전선을 구축키로 했다.

김대중 처단 주저할 때가 아니다.

1997년 10월 7일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김대중 불법정치자금을 폭로했을 때 김대중이 "검찰수사를 강행하면 민란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김영삼 정부를 협박하자 이에 굴복한 김태정 검찰총장이 10월 21일 ´민란´을 핑계로 수사유보 방침을 밝히면서 사건이 유야무야 된 사례가 있다.

(김태정은 그 공로로 김대중의 법무부장관에 발탁됐다가 옷로비 사건으로 당시 청와대 법무관 박주선 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낙마하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이 합법적인 민주선거에 의해 탄생한지 불과 9개월 남짓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매도하면서 60년 1인 살인폭압독재자 김정일과 ´연방제 통일´을 약속한 6.15 반역선언과 전범집단수괴 敵軍 사령관에게 14조원을 퍼주겠다고 한 10.4 매국합의 실천을 목적으로 반체제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은 명백한 國憲紊亂이다.

김대중, 강기갑, 정세균, 문국현이 뭉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내세우는 "독재정권 타도, 남북문제 역주행저지"라는 구호와 슬로건 뒤에 숨겨진 저의는 각자가 처한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 보려는 ´잔머리 굴리기´로 보인다.

김대중의 경우 ´무기상 조풍언씨´귀국 체포로 인하여 천문학적인 외화도피와 불법자금이 백일하에 드러날 위기를 맞고 있으며 선거법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우려를 안고 있는 강기갑이나 이미 의원직상실 刑을 선고 받고 있는 문국현은 물론 식물정당이 된 민주당 대표 정세균에게도 도피처와 돌파구가 필요 한 것이다.

우리는 비록 오래된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지만 1976년 2월 미국에서 폭로된 ´록히드추문´에 연루된 살아있는 권력 다나카가꾸에이(田中角榮) 현직총리를 구속한 1976 7월 27일 <일본검찰의 의거>를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낱 부패스캔들로 《살아있는 권력 현직 총리》를 구속한 일본검찰에 비하여 국헌문란과 내란 모의 혐의를 받는 《죽은 권력 전직 대통령》을 구속처단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검찰에 실망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여기에서 자칭 타칭 애국(?)인사들과 먹물 꽤나 든 보수우익 지식인에게 告한다.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이 북 사회민주당 위원장으로 가장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남공작지도부 김영대와 회합하고 돌아온 촛불폭동 주범 강기갑과 <6.15망국선언과 10.4매국합의>이행을 명분으로 정권타도 체제전복에 목표를 둔 폭동반란 음모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김일성에 절대 충성하고 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친북투항세력이 북과 내통하여《反 대한민국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면 대한민국 수호 애국세력은 일치단결 총궐기하여 이를 저지 분쇄해야 할 것이다.

6.15망국선언과 10.4매국합의에 목을 매는 김대중 강기갑 정세균 문국현 부류들은 김일성 대를 이어 2대수령 김정일에 충성하고 김정일 대를 이을 3대수령에게 충성 할 준비가 돼 있는 김일성 왕조 세습노예이자 씨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자손들이 김일성 왕조 3대 수령의 노예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참고]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이 5.18 만 7개월 후 전두환 대통령에게 목숨을 구걸한 탄원서를 다시 한 번 음미 해 보기로 하자.

탄 원 서

본적: 서울 마포구 동교동 31-1
주소: 좌 상 178-1
성명: 김 대 중 (1925.12.6)

대통령각하

본인은 국가보안법, 반공법, 내란예비음모, 계엄포고 위반사건 등으로 1,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상고 중에 있습니다.

본인은 그간 본인의 행동으로 국내외에 물의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국가 안보에 누를 끼친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국민 앞에 미안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본인은 앞으로 자중자숙하면서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새 시대의 조국의 민주 발전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적극협력 할 것을 다짐합니다.

본인은 본인과 특히 본인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특별한 아량과 너그러운 선처가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981년 1월 18일

위 김 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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