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뉴스=신영수 기자]  자전거타기 딱 좋은 날이다. 오래간만에 영상 기온을 되찾았다. 한낮의 기온이 영상 9도. 봄이 오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시화방조제 위, 모든 게 쾌청하다. 하늘도 바다도 모두 파란빛이다. 요즈음 날씨치고 보기 드물게 맑고 따뜻한 날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람마저 잔잔하다.

집을 나설 땐, 바닷바람이 오죽 차고 거셀까 잔뜩 긴장했다. 한겨울에 바다 한가운데서 휙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다 괜한 걱정이었다.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수 없다.


방조제 위를 천천히 달린다. 바다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나간 방조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끝에 다다르면 대부도로 내려서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시화방조제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방조제 위에 올라서면 한없이 그 길을 가야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어딘지 모를 세상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처음 방조제 위에 올라서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다급해진다. 착잡해진다.

나중엔 어서 빨리 이 길에서 내려가야지 하는 생각에 골몰한다. 그러다 방조제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도 모르는 새 정신없이 방조제를 지나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허탈하다. 그때가 돼서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어느 길이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방조제 위,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 길에 한 군데 더 들러 가야 할 곳이 생길 예정이다. 방조제 2/3 지점에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엄청난 규모다. 세계 최대란다. 발전소만 건설하는 게 아니라 주변을 공원화한다. 조감도를 보니 바다 위에 아예 하나의 섬을 건설하고 있다. 공원 한쪽에 '자전거쉼터'도 표시돼 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 속도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다.


자전거를 타고 제부도에 갔던 게 2007년 10월이다. 그때만 해도 제부도는 화장기가 없는 민낯에 가까웠다. 평일 아침이라 관광객이 없어 더 황량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제부도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섬 북서쪽 절벽 해안을 돌아가는 산책로를 걸어, 제부도 해수욕장에 서서 매바위를 흘깃 쳐다보고 지나친 게 전부였다. 갯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바닷길이 아니었다면, 굳이 제부도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제부도에도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바닷가에 예전엔 보지 못했던 구조물들이 들어서 있다. 제부도 해수욕장 앞 음식거리도 꽤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다. 산뜻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연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 때문에 어디에다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제부도를 여행하는 자전거여행자에겐 이곳 갯벌 위 바닷길만큼이나 매력적인 곳도 없다. 썰물 때 드러나는 이 길은 물이 다 빠지고 나면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도로 역할을 한다. 비록 갯벌 위에 시멘트를 굳혀 만든 길이기는 하지만, 일반 도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눈앞에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무시무시하다고? 아니다. 유쾌하다. 쩍하고 갈라진 바다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이곳 말고 또 있을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높은 다리가 아니어서 더 다행이다. 당연히 제부도를 갈 때는 바닷물이 빠지는 때를 잘 알고 가야 한다.

3년 전에 이 길을 갈 때는 도로 위에 바닷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오늘은 바닷물이 빠진 지 꽤 됐는지 길이 상당히 건조하다. 도로 옆으로 산책로가 놓여 있다. 누구는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오간다. 급한 일만 없다면, 제부도 밖 어딘가에 차를 세워두고 섬 안까지 천천히 걸어서 들어갔다 나와도 좋겠다 싶다. 주말에는 제부도 안이 온통 차와 사람으로 북적인다. 제부도는 면적이 평방 1k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 안에 자동차까지 넘치는 게 왠지 안쓰럽다.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에 위치한 탄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누에섬 등대 전망대' 앞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3기가 우뚝 서 있다. 지난해 12월 30일에 완공했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꽤 위압적이다. 도로 위에 서서 멀리 내려다보는데도 위용이 대단하다. 높이가 무려 100m. '윙윙' 매서운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하루 한두 차례 물길이 열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부도와 마찬가지로 썰물 때 풍력발전기 밑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예전엔 탄도에서 누에섬 등대전망대를 보러 가기 위해 걷던 바닷길이다. 풍력발전기 때문인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유난히 많다. 누에섬까지는 약 1km. 그 길 오른쪽에 보이는 바위는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은 한 어부 부부가 나중에 영혼만 돌아와 바위가 되었다는 '부부바위'다. 그 바위에도 길이 놓여 있다.


풍력 발전기가 세워지고 나서 누에섬 전망을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닷길 위에 서서 보면, 풍력발전기가 누에섬 일부를 가리고 서 있기 때문이다. 풍력 발전기가 조금 더 오른쪽으로 치우쳤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된 일인지 멀리서 보면 누에섬에 바투 붙어 있는 형국이다. 풍력발전기가 누에섬 전망을 가로막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견해는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풍력 발전기를 탄도항의 또 다른 볼거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곳은 서해 일몰을 바라다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누에섬 위로 지는 태양을 찍기 위해 해변에 사진사들이 카메라를 앞세워 길게 진을 치고 있다. 그들 주변에 일전을 치르는 사람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고 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두 부류로 갈렸다. 누에섬 등대 전망대를 중심으로 일몰을 찍으려는 사람과 풍력발전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일몰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 물론 그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찍으려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대세는 풍력발전기 쪽이다.


잠깐 사이에 참 많은 게 변했는데, 그 와중에도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곳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데 가장 중요한 시설물, '도로'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내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도로 주변에 음식점들이 들어서는 속도에 반해, 그 음식점 앞을 지나가는 도로에서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다소 의아하다. 대부도를 관통하는 지방도로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다.

3년 전 대부도를 지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과거가 아닌 현실로 남아 있다. 도로는 좁고 갓길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로 바로 옆으로 개천이 흐른다. 자칫 잘못하면 개천에 빠지는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 실제 3년 전 이 길을 가다 뒤에서 바짝 따라오던 승용차의 경적 소리에 놀라 개천에 떨어질 뻔한 적이 있다. 자전거 앞바퀴가 개천으로 떨어지면서 도로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사고 현장도 그대로다. 이 길을 가는 내내 식은땀이 흐른다.

주말이라 차량이 많은 편이다. 도로가 좁아 자전거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차들이 많다. 자동차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섬뜩섬뜩하다. 이럴 때일수록 자전거 핸들을 다루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당황해서는 안 된다. 핸들을 똑바로 고정하고, 가급적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이 길에 사람이 같이 걸어가고 있거나, 경운기가 앞서 가고 있을 때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사람과 자전거 등을 한꺼번에 추월하려는 차들이 참을성을 잃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때 반대편 차선에 다른 차가 마주쳐 오기라도 하면, 예측불허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길에서는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게 무리다.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가면, 떼로 몰려오는 자동차에 위축이 되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차에 놀라 도로에서 밀려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제부도를 하루만에 다녀오기 힘들 때는 24시간 운영하는 찜질방에 묵어갈 것을 권한다. 찜질방은 제부도 바닷길에 들어서기 1km 직전, 318번 지방도로 변에 있다. 참고로 제부도 가는 길에는 대부도와 선감도, 불도, 탄도 등의 섬을 지나간다. 간척사업으로 이 모든 섬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지역권으로 통합됐다. 이 섬들은 모두 안산시에 속하고,
탄도를 지나면 화성시다. 제부도는 화성시에 속한다.

어떻게 갔다 왔나?

오이도역(4호선)까지 자전거를 싣고 갔다. 오이도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앞에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그 아파트 단지를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길 건너에 자전거도로가 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옥구공원까지 올라간다. 도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시화방조제다. 시화방조제를 끝까지 달리면 대부도다.

대부도에서는 301번 지방도로를 타고 간다. 길을 찾는 데는 지방도로를 따라가는 게 가장 무난하다. 하지만 도로가 상당히 험한 편이다. 그 길을 피해 시화방조제를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대부도 해안가 방조제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아직 공사 중인지, 그 길 위로 트럭이 줄을 잇는다.

돌아올 때는 제부도에서 탄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그리고는 탄도항으로 들어서는 교차로 위 버스 정류장에서 123번 버스를 탔다. 그 다음에는 안산역에서 전철로 갈아탔다. 이날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거리는 총 7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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