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시대였던 바로크에서 20세기 초는 작곡가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던 '음악가'의 시대였습니다. 간혹 부족한 연주력이 작곡 능력을 가린 슈베르트 같은 경우가 있으나, 작곡력과 피아노 연주력은 대부분에서 비례했습니다. 연주력과 화성 이해는 작곡에 긴밀한 영향을 줍니다. 때문에 미디 작곡이 기반을 이루는 21세기에도 작곡가들은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잘 다룹니다.

바흐와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건반 주자였습니다. 둘은 무대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경지의 즉흥연주로도 대중을 경악케 했습니다. 작곡가보다 '천재 즉흥연주자'로 먼저 명성을 날린 베토벤은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의 기술적, 산업적 진보를 선도했죠. 18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연주와 즉흥연주 능력을 작곡가의 주요 자질로 평가했습니다. 즉흥이 블랙뮤직의 전유물이 된 21세기에는 생경한 풍경이지요.


연주와 작곡이라는 시대적 경향은 프란츠 리스트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끝으로 희미해지고 작곡과 연주의 역할은 세분화됩니다. 리스트를 기점으로 피아노의 테크닉은 한층 더 난해해졌고, 20세기부터 시작된 '현대음악'의 과도한 실험이 음악 애호가들의 외면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는 헝가리와 러시아인으로, 서유럽의 패권하에 있던 유럽음악은 소련 영토를 중심으로한 동유럽으로 세력이 이동합니다. `예술 음악`을 자신들의 해석으로 연주해내는 '연주자들의 시대', 슬라브 혈통 연주자들의 20세기가 도래합니다.


`테크니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독일의 연주` 빌헬름 박하우스, `소련의 강철 타건` 에밀 길렐스, `광기의 연주자` 아르투로 미켈란젤리, 재즈를 넘나들며 활약한 프리드리히 굴다. 세기의 거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절정에는 스뱌토슬라프 테오필로비치 리흐테르(1915-1997)가 있습니다. 그는 감히 '완전성'을 떠올리게 한 연주자였고, 그것은 그를 20세기 거장들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게 합니다.

 

독일계 폴란드인 아버지(리히터)와 러시아인 어머니를 두고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리흐테르는 극단적이었지만 냉정한 인물이었습니다. 객관성을 절대 가치로 추구했고, 동시에 소년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웠습니다. 동료들이 서방으로의 망명과 공산당 가입의 기로에 놓이는 와중에도 그는 평생 소련의 인민으로 살았고, 끝내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습니다. 소련의 주요 예술가 중 당에 가입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로 기록됩니다. 덕분에 주택조차 배급받지 못해 지인들의 거처를 떠돌며 생활합니다.


그는 글렌 굴드와같이 치열하게 관습과 맞서 싸운 음악가입니다. 굴드처럼 리스트의 '왕자 피아니스트'론을 경멸했습니다. 천부적 암보력으로 유명했지만 악보를 보며 연주하고, 무대의 조명은 피아노만을 비췄습니다.

작품 전곡을 무대에 올리거나 녹음해야 한다는 암묵적 의무도 거부했기에 그는 연주한 곡보다 연주하지 않은 곡들도 더 화제를 낳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조차 36곡 중 22곡이나 연주했으면 충분하다며 손사레쳤고, 오직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만 나흘에 걸쳐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경직되고 일률화 된 21세기 클래식 연주자들과 대비되는 예술가적 자유, 그리고 관습에 대한 투쟁과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를 한 세기 후에도 탐구하게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형식이 아닌 본질에 대한 강한 집착과 탐구였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8회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연재 중
- 서울문화재단X성동문화재단 <잇고, 있고> 소리 프로젝트 작곡
- 제6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음악 낭독극 프로젝트 <공명> 음악감독
- 코리아뉴스타임즈(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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