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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피아니스트 김별의 클래시컬 뮤직(16) - 드뷔시의 프랑스
[기획연재] 피아니스트 김별의 클래시컬 뮤직(16) - 드뷔시의 프랑스
  • 김별 객원기자
  • 승인 2020.04.0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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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에게 드뷔시라는 존재는 그때도 지금도 특별하며 그들 음악의 자긍심입니다. 바흐-베토벤-바그너-브람스의 독일음악 거장 구도는 프랑스 음악에 대한 연구 속에서도 발견되며, 더 고유한 정취를 지닙니다. 특유의 세련미와 신비의 색채는, 오직 프랑스만의 것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


19세기 프랑스와 유럽은 독일, 특히 바그너이즘(Wagner-ism)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ㅡ그러나 바그너와 말러의 유려한 관현악 이전에 프랑스의 베를리오즈가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봐야 합니다ㅡ 이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발이 '프랑스적' 음악 태동의 근본이 되며, 1871년 카미유 생상스가 '아르스 가리카(프랑스 예술)'라는 구호 하에 설립한 <프랑스 국민음악협회>는 그 조직적인 출발이 됩니다.
생상스의 가르침을 받은 가브리엘 포레는 단선 성가와 중세의 교회선법을 사용해 프랑스적인 선율을 제시했고, 이들의 기초를 계승/발전시켜 프랑스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등한 위치까지 끌어올린 이들은 포레의 제자인 드뷔시와 라벨입니다.

프랑스 지폐 속 드뷔시
프랑스 지폐 속 드뷔시

 

모리스 라벨은 선배 드뷔시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음악 씬에 등장합니다. 그는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의 심미성을 따랐고 작곡에 있어 모차르트가 보여준 명징함과 완벽성, 순수성, 많은 창작량을 본으로 따랐습니다.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형식미의 강조, 기법의 객관성, 감정의 절제에 있어선 신고전주의적 성향을 깔고 있었습니다. 포착한 인상들에 질서와 또렷한 윤곽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생상스가 음악협회를 설립하며 주창한 프랑스 음악의 정신 -주관적 감수성보다 완벽한 절대미에 대한 추구-와도 닿아 있습니다.

 

드뷔시와 라벨은 도래할 20세기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벨의 대표적 유산은 미니멀리즘의 시대에 대한 선구적 개척입니다. 대표작이기도 한 볼레로(1928)에서 이미 그 모범을 보인 일정한 음형, 반복되는 리듬, 절제된 악기 구성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 주요 경향의 하나인 미니멀리즘을 멀찍이서 예표합니다.

라벨의 작품 곳곳에 펼쳐진 이국적 찬란함은 그를 상징하는 아름다움입니다. 1928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조지 거슈인과 교류하며 재즈 스케일에 매료됐고, 마찬가지로 라벨에게 매료된 거슈인이 그 문하에서 작곡을 배우길 청하자 "왜 2류 라벨이 되려 하는가, 자네는 이미 1류 거슈인이네"라며 사양합니다.

드뷔시 역시 제3세계 음악들로부터 그간 발견되지 못한 새 음악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결정적이었던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을 두고는 "우리가 숨쉬기를 배우는 것처럼 그들은 자연히 음악을 체득했다. 그들의 음악학교에선 바다의 영원한 리듬과 나뭇잎 사이의 바람을 배운다. 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닌 평생 들어온 작은 소리들이 그들의 음악을 구성하고 있었다"라고 감탄합니다.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적 절정기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그들의 음악적 동기이기도 했던 애국심에 둘은 군입대를 자원했고, 드뷔시는 거절당하고 라벨은 불혹의 나이로 참전합니다.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라벨은 걸작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바칩니다.

드뷔시의 인격에 대한 환멸, 평단의 '드뷔시보다 더 드뷔시스러운 작곡가'라는 자신에 대한 평에 라벨의 심기는 불편했고 드뷔시와 격한 음악적 비판을 주고받기도 했으나, 1918년 드뷔시의 사망에 라벨은 슬픔과 존경을 표하며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해 헌정합니다. 여성편력의 드뷔시와 달리 라벨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드뷔시 사후 20년에 사망합니다.

 

젊은 드뷔시는 바그너의 음악을 '여명으로 오해된 황혼'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는 19세기 유럽을 정확히 관통했던 표현이자, 불행히도 훗날 드뷔시 자신에게도 들어맞은 표현이 되고 맙니다. 드뷔시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는 수없이 많지만, 그 직접적 후계자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세기말과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세계사의 격동이 드뷔시와 프랑스 음악을 고립시켰습니다.

기존 전통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드뷔시를 인정하지 않던 거대 낭만주의보다 그를 더 고립시킨 건 '신음악'을 주창한 새로운 세대였습니다. 음악적 기성세대가 저무는 것에 열광한 그들은 인상주의까지도 뛰어넘고자 시도했고, 드뷔시의 친구이기도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음악의 전체 지형을 변화시킵니다. 젊은 날의 드뷔시는 혁명적 존재였으나ㅡ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쇤 베르크 등 전혀 새로운 음악가들의 등장은 그를 금세 철지난 존재로 만듭니다.


1915년 암 수술 이후 죽음을 직감한 드뷔시는 마지막 숨을 다해 <프랑스 전통에 의한 6개의 소나타> 작곡에 착수하고, 곧 사망해버립니다. 그에게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라는 수식이 헌사됩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7회 (2019.03.23. 나루아트센터)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연재 중
- 서울문화재단X성동문화재단 <잇고, 있고> 소리 프로젝트
- 제6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음악 낭독극 프로젝트 <공명> 음악감독
- 코리아뉴스타임즈(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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