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부흥의 원동력

[조은뉴스=박진호 기자]   1980년 1월 6일 부산시 다대동 592-3번지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행해졌다. 당시 교역자 사택이던 이곳에서 창립예배와 함께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임을 만방에 고한 것이다.

몇몇의 신자들만이 참석한 전부였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미약한 출발이었지만 이곳은 30년 후인 지금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서 좋게 소문난 교회 중 한곳으로 우뚝 섰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욥8:7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다대중앙교회(담임목사 박은성)의 의미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1980년 1월 6일 첫 예배를 시작으로 교회의 터를 다대중앙교회는 불과 4개월 후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인지 5월 20일 당시 반도목재 대표이사였던 정해덕 장로의 봉헌으로 지금의 다대동 621-1번지에 새롭게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같은 해 12월 21일 입당하게 된 후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82년 1월 3일 박은성 목사가 반도목재 사목과 다대중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하면서 또 한 번의 도약기를 맞게 된다. 박 목사의 부임을 계기로 다대중앙교회는 기틀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이를 기반 삼아 복음사역에 주력하게 시작했다.

박 목사는 숭실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2월 장로회 신학대학원(광나루)을 졸업한  후 서울 영락교회 심방 부 전도사로 2년여의 사역에 이어 서울 중구 묵정동 신광교회 부목사로 부임하여 2년의 사역을 무사히 마친 젊은 목회자였다.

다대중앙교회에 부임하게 된 박 목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연단을 받았다.

당시 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전형적인 어촌이어서 미신과 우상 숭배가 심한 곳 이었다. 그랬던 탓에 초창기에 영적인 싸움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 목사는 그 싸움을 견디어 내며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박 목사는 “나를 강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견뎌냈지요. 하나님은 병든 영혼과 귀신들린 영혼들을 붙여 주시면서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임을 알게 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보이시며 부흥을 주셨습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봉사와 섬김, 그리고 부흥

박 목사는 그렇게 지역 봉사로, 섬기는 일로, 부흥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인구 이동이 많은 지역적 특성상 교회 부흥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특유의 뚝심과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연단을 견뎌 나갔다.

박 목사는 부임하던 해부터 지금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지역 노인들을 섬기면서 경로잔치를 개최해 왔다. 또한 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아교육에 힘쓰는 한편, 소년소녀 가장 돕기와 장학사업,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등을 쉼 없이 실천해 오고 있다. 지난 1998년 7월 1일에는 남자 노숙자 쉼터를 개소하여 10-12명의 노숙자를 섬기고 있다.

박 목사는 올해 다대중앙 사회 봉사관을 준비하여 핍박받는 여성의 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요양센터, 방과 후 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고, 독거노인을 위해 반찬 나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박목사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다대중앙교회는 부산지역 칭찬받는 교회로 설 수 있었다. 현재 다대중앙교회는 등록교인 630여명, 출석교인 450-500명(성인), 년 예산 6억5천만원 규모로 성장했다.

박 목사는 일찍이 선교에도 힘을 써 왔다. 1984년 페루에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후원회를 조직하고, 1985년 3월에 파송하여 협력선교를 시작한 이래 현재 13개 처에 협력·후원하는 한편, 국내 15개 미자립교회도 후원하고 있다.

박 목사는 “마지막 때가 되어 미혹의 영들이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갖도록 유혹하고 있다”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하셨으니 우리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우선하는 믿음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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