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상징되는 독일어권 작곡가들은 압도적 인지도와 존재감을 차지합니다. J.S.바흐의 등장 이후 200년 가량 유럽에서 독일어권 작곡가들의 영향력은 실제 막강했으나, 모든 독점이 그렇듯 이는 비 독일어권 음악의 가치를 지나치게 소외시키고 말았습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댄 '전통과 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태동할 문화적, 지리적 토양의 나라였습니다. 여전히 바그너라는 당대의 절대자가 유럽을 호령하던 후기 낭만파 시대, 프랑스에서는 이를 전복해낼 만한 새로운 사조- 인상주의가 조용히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빛과 바다, 하늘과 바람을 음악에 담고 싶다. 어떤 화성은 음악회장에서 비정상적으로 들려지겠지만, 열려진 창공의 세계에서는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상상이 결여된 학문적 전통은 음악을 질식시킨다.”


고전을 계승하면서도 당시 독일음악의 권위에 저항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찾고자 투쟁한 작곡가/피아니스트 클로드 아실 드뷔시(1862.08.22~1918.03.25)의 존재는 인지도와 별개로 독보적입니다. 그는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에서 프랑스 중심의 인상주의로 유럽음악의 줄기를 돌렸고, 현대음악의 모태가 된 가교적 인물입니다.


드뷔시의 음악세계 형성은 역시 유년기와 연결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드뷔시는 9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인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에 가담한 혐의로 진압군에 체포, 깐느의 고모 집으로 이주해 짧은 기간을 보냅니다. 이 해변 도시에서의 유년기 삶은 1년 남짓이었으나, 그는 스스로의 자아를 `뱃사람`으로 평생 규정했고, 바다와 자연을 친구로 보낸 시간은 그의 정서를 지배하며 예술세계 전반에 영감을 투영했습니다.

드뷔시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미술과 문학은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일본 근대미술에 심취했고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 상징주의 문학가들과 긴밀히 교류하며 그들의 세계를 음악에 도입했습니다. 그들이 자연을 받아들인 방식에 주목하여 창작의 동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음악이 미술과 문학보다도 생생한 표현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색감과 빛뿐 아니라 역동적인 운동까지도 표현이 가능한 음악을 상상했습니다. 기존의 조성과 화성에서 벗어나 광활한 음향과 색채감을 구현하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는 화음이라는 개념을 조성의 맥락에서가 아닌 각각의 독립 개체로 이해한 최초의 작곡가였고, `음색`은 음악의 색채를 넘어 곧 음악의 본질, 자연과 표현의 본질적 도구로 승화되었습니다.


미술이나 문학, 그 어떤 예술보다 음악과 결부된 분야는 수학입니다. 음악은 고도의 감각예술인 동시에 엄격하고 정밀한 수학 체계입니다. 감각과 수학에서 발현한 세계이며 여전히 감각과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따라서 전통적 작곡은 가장 많은 지식의 체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며, 음악과 작곡의 역사가 남성들에 의해 발전하고 (성평등에 다가가는 와중에도)작곡 분야를 유독 남성이 좌우하는 것의 단서를 이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음악은 청중 앞에 전해지자마자 사멸하는 시간의 예술입니다. 이 점에서 다른 예술들과 성질을 달리하며, 대중들은 음악가의 감정 표현에 유독 많은 감정을 투영합니다. 그러나 노년의 거장 지휘자들이 브루크너를 연주할 때 보이는 간결함과 경건함은, 두다멜같이 몸을 던지는 젊은 지휘자가 아직은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음악은 감정 이전에 사유와 냉철을 바탕으로 합니다.


막장 드라마보다 파괴적인 여성편력, 동시에 사랑꾼, 누구보다도 풍부한 음악의 감정을 이룩한 드뷔시는 화음 하나를 고르는 데 몇 개월을 사용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상상하던 음악을 실현하기 위해 학문적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음악의 수학 속으로 들어가 불협화음의 체계를 정립했고(이 지점에서도 그는 재즈와 현대음악의 발단에 영향을 줍니다) 교회선법, 온음음계, 6음음계, 동양 5음계(베트남,캄보디아,자바음악), 9-11-13 화음을 도입하는 등, 기능화성의 파괴와 바그너의 반음계에 대항할 수학적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자연과 색채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냉담한 통찰을 통해 그는 인상주의라는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탄생시킵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8회 (2020.03.28. 나루아트센터)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연재 중
- 서울문화재단X성동문화재단 <잇고, 있고> 소리 프로젝트
- 제6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음악 낭독극 프로젝트 <공명> 음악감독
- 코리아뉴스타임즈(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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