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마케도니아(트레이스의 스타기라)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로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논리학, 시학, 자연학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하여  400여권,
어떤 학자는 1,000여권을 남겼다고도 하고 그가 쓴 문장이 445,270행이라는 엄청난 분량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남겨진 것은 알 수 없다. 

그는 17~18세에서 23세 무렵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 입학하여 이곳에서 20년간 공부 하였는데 책 읽기에 몰두하여 플라톤으로부터  "책벌레" 또는 '아카데메이아의 예지'라는 별명을 들었다고도 한다. 

기원전 348년 헤르메이아스 왕의 초청으로 트로이 근처 아소스로가에서 3년간 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곳에서 헤르메이아스 왕의 조카인가 여동생인 피티아스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고 얼마 후, 그녀가 죽어 헤르필리스와 함께 살았는데 그녀에게서 낳은 아들이 니코마코스 (부친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후 니코마코스 윤리학 저술)다. 

기원전 345년 레스보스 섬으로 건너가 이곳에서 살면서 생물학, 해양생물학 등에 관한 저술을 하였고 기원전 343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왕의 초빙을 받아 그의 왕자 알렉산더를 지도하였다.  알렉산더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지원을 받아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이라는 학원을 세워 그곳에서 약 12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아테네에 반 마케도니아 정서가 감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아테네 법정에 "신에 대하여 경건치 못하다!"라는 죄로 고소되자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 한 번 철학자에 대하여 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칼키스로 피신하였으나 기원전 322년 피신한지 1년 만에 일을 많이 하여 생긴 만성 소화불량(다른 설도 있음) 때문에 죽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많은 저술을 통하여 서양 학문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서양 사상의 출발점 이자 뿌리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혀가 굳은 탓에 말더듬이였고, 보잘것없는 용모(그의 눈은 작았으며 다리는 가늘었다. 성격은 겁이 많고 우유부단하고 현실 도피적이었으며 나약하고 소심했다.)를 꾸미기 위해 남달리 치장에 신경을 썼다고 전한다. 

아케데미에 입학하기 전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신탁(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신에게 물었을 때, 신이 그 물음에 대해 응답해주는 일)에 물어보도록 했다. 이때 그는 '철학을 공부하라!'라는 신의 대답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의 사상속으로 들어가 보면, 'Metaphysics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그리스어의 'Meta ta Physika(자연학의 다음)'란 말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자연학의 다음에 집필되었기에 붙여진 명칭으로 '자연학의 배후 또는 그것을 초월해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학문'으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자연을 넘어서 있는 어떤 것, 비록 나타나지는 않지만 자연의 피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존재 하는것을 존재하게끔 하는 바로 그것에 관한 학문'이란 의미로 오늘날에는 '사물의 일반적 원인이나 존재의 근원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과'를 말한다. 

(내일은 2부로 이어집니다.)
오늘도 쌀쌀한 날씨지만 행복하고 평안한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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