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한비자[韓非子]°
"법(法)"은 드러내야 하고, "술(術)"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주받은 '비기'를 남긴 말더듬이 한비자,  
그는 인성의 약점과 욕망을 끔찍하리 만큼 아프게 지적한 칼날같이 예리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지성의 한비자가 바라본 세상!

(어제 8부에서 이어집니다.)
"한비자는 유능한 인재의 기준을 분명하게 정 했다. 또 이런 인재들을 기용하고 추천하는 용인의 원칙도 제기했다. 그는 "안으로는 친척이라 해서 피하지 않고, 밖으로는 원수라해서 피하지 않는다" 는 주장을 내세웠다. '법'과 '술'의 요구에 부합하고 재능이 있으며 군주에게 소용이 있다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낮아도, 또 친척이나 원수라도 추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이런 '용인' 철학은 지금 보아도 진보적 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깊은 산속이나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감옥에 갇혀 있는 범죄자라 도, 요리를 하거나 소를 치는 노예라도 현명한 군주는 그 지위의 비천함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그 재능에 근거하여 대담하게 추천하고 임용하여 법도를 밝히고 국가와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여 자신의 몸과 지위를 존엄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진(晉)의 중모현(中牟縣)에 현령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진 평공(平公)이 조무(趙武)에게  "중모는 진나라의 요충지이며, 한단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오. 과인은 우수한 관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가장 적당하겠소?"라고 물었다. 조무는 형백의 아들이 적당하다고 대답했다. 

평공은 깜짝 놀라면서 "형백이라면 그대와 원수 처럼 지내는 집안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조무는 "군주를 위해 국사를 말하는데 사적인 은혜나 원한 같은 감정이 끼어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진 평공은 또 "중부(中府) 담당관으로는 누구를 임명하면 좋겠소?"라고 조무에게 자문을 구했다. 

조무는 자기 아들을 추천했다. 이처럼 인재를 추천할 때는 원수나 아들이라고 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이런 예도 소개한다.

해호(解狐)가 조간자(趙簡子)에게 자기와 원수인 사람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재상에 추천된 그 사람은 이에 원한이 없어진 것이라 생각하여 사례를 하고자 해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해호는 그를 맞으러 나오면서 활시위를 당겨 그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면서 "당신을 추천한 것은 공적인 행동일 뿐 이다. 당신이라면 맡은바 임무를 잘 수행할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과의 원한은 사적인 일 이기 때문에 원한이 있다고 왕께 당신을 추천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래서 개인의 원한이 공적인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비자는 진(秦)에서 6국을 병합하는 계책을 건의했다. 먼저 원교근공으로 6국의 합종을 깨고 한·조·위를 멸망시킨 다음 다른 제후국을 멸망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진왕은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고는 얼마 뒤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한 이사가 진왕 앞에서 "한비자는 한의 공자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6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려고 하시는데, 한비자는 결국은 한을 돕지 진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런데 그를 기용도 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머물게 한 다음 돌려보내는 것은 후환을 스스로 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구실을 달아 법에 따라 그를 죽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모함했다.

진왕은 사법관에게 명령하여 한비자의 죄를 묻도록 했다. 이어 이사는 다시 사람을 보내 한비자에게 독약을 주면서 자살케 했다. 얼마 뒤 진왕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한비자를 사면 하려했으나 한비자는 벌써 옥중에서 죽은 뒤였다.  그러나 진왕은 법·술·세를 결합한 한비자의 정치모략을 모두 접수했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실행해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한비자의 학설이 후세에 남게 되었다. 사마천은 한비자를 두고 일을 단호하게 잘 처리 했으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명쾌했지만 그의 사상은 너무 가혹하고 각박하여 은덕이 부족했다 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세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한비자가 『세난』 편을 상세하게 저술했음에도 결국은 진에서 죽음을 당해 그 자신이 유세에 따른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몹시 비탄해 했다.

오늘도 한비자의 '용인'철학을 잘 헤아려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