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은 글렌 굴드와 그의 바흐 해석을 영화판 한복판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트리에는 줄곧 바흐와 굴드에 관해 이야기 해온 작가였으나 문제작이며 '은퇴작'인 이 작품에서 그는 다분히 노골적이고 문제적으로 그들의 광기를 다룹니다. 트리에와 굴드는 정신 질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입니다. 바흐는 경건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그의 예술성에 존재했던 극단의 모순과 모순의 대립은, 굴드와 트리에를 비롯한 많은 광기의 천재들에게 강한 영감을 심어냈습니다.

어떠한 풍의 곡일지라도 바흐 음악이 염세적인 영화에 주로 조화되는 이유는 바로 냉정한 객관성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감정과 몇 걸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바흐와 바로크 음악, 그리고 객관적 음악의 절정인 대위법 양식의 특성은 곧 같은 곡을 통해서도 극단의 감정들을 연주자의 해석, 관객의 이해로 변환 가능하게 했습니다. 성스럽고 경건한 동시에 음울하고 도취적인 바흐의 푸가는 그리하여 극단적 영화의 극단적 씬들을 지배해왔습니다.

'서양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생전 무명에 가까웠으며 사망 후에는 음악 소비자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져갔습니다. 그의 아들 필립 엠마누엘과 요한 크리스찬이 18세기 유럽음악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아버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된 것은 펠릭스 멘델스존이 <마태수난곡>을 복원하여 무대에 올린 순간입니다.

바흐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개신교인이었던 멘델스존은 사장되었던 마태수난곡의 원본을 드라마틱하게 발견, 흥행에 아주 비관적이면서 또 장대한 분량의 대곡이었던 그 곡에 자신의 소명을 다 바쳐 마침내 대규모 연주회를 엽니다. 1829년 3월 11일 마태수난곡은 그렇게 작곡 100년 만에 역사의 전면에 찬연히 부활했고 이는 곧 바흐라는 신화의 부활을 의미했습니다. 바흐는 그렇게 음악의 아버지가 됩니다.

클래식 음악은 개신교, 유럽의 이성주의, 제국주의와 밀접한 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들에게 클래식은 곧 폭력과 광기의 역사입니다. 명문가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은 7세 때 개신교로 개종했습니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의 개신교 개종은 유럽 공동체에 수용되기 위한 승차권이었고, 그가 마태수난곡을 발굴해 지휘한 것은 유럽 상류사회로 가기 위한 최종적 의례였던 것으로 그들은 바라봅니다. 산업혁명 이후 권력을 쟁취한 개신교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문화 권력을 상징할 아이콘을 찾던 중 독실한 개신교도 바흐를 발견해 '음악의 아버지'로 추대했으며, 바흐의 말년 가톨릭 개종이 이상하리만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개신교 제국주의 세력의 입김 때문이었다고 그들을 바라봅니다.

클래식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맨 꼭데기에 군림하는 최상위의 음악은 아니며 정서에 순화 작용만을 하는 음악도 당연히 아닙니다. 클래식은 재즈와 함께 인류의 음악 유산 중 가장 깊은 '깊이'를 가지고 있고, 정서적 풍성함을 곳곳에 담으며 극단적 광기와 폭력성을 담기도 하고 숭고한 경건과 지성을 담기도 하는 음악임 뿐입니다. 굴드의 바흐를 영화판에 각인시킨 91년 걸작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는 살인 때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정서를 순화시키며 일종의 종교 의식을 치러냅니다.

클래식 음악의 본질이며 특징은 '사유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요. 클래식은 어느 음악 장르보다 역사와 철학을 그 저변에 담고 있고 이성과 감정, 사유를 추구합니다. 곧 인문과 지성의 예술입니다. 클래식이 진정 뛰어난 음악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러한 점들 때문일 것이고, 동시에 그러한 점들은 물론 클래식을 충분히 가치로운 음악으로, 또 앞으로도 오래 그 가치가 지속될 만한 음악으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7회 (2019.03.23. 나루아트센터)
- e조은뉴스 <피아니스트 김별의 별별예술> 연재 중
- 서울문화재단X성동문화재단 프로젝트 <잇고, 있고>
- 제6회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음악 낭독극 프로젝트 <공명> 음악감독
- 코리아뉴스타임즈(현 이코리아) <김별의 클래식 산책> 2017~2018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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