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경찰부터 광복 이후 경찰까지…대를 이은 경찰정신

1919년 4월 11일,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하며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25일에 임시정부 경찰조직인 내무부 경무국 직제와 분장사무가 처음 규정되었고, 8월 12일에 초대 경무국장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임명되면서 임시정부경찰이 실질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경무국장 시절 김구 선생(왼쪽)과 도산 안창호, 이탁 선생. (사진=경찰청 제공)
경무국장 시절 김구 선생(왼쪽)과 도산 안창호, 이탁 선생. (사진=경찰청 제공)

당시 임시정부경찰은 법령에 의해 설치·공포된 정식 치안조직으로, 임정을 수호하고 일제의 밀정을 방지하는 임무를 통해 임정이 항일투쟁을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임시정부 내무부 산하 경무국(과)과 함께 연통제 산하 경무사·경감, 그리고 대한교민단 산하 의경대와 중경 시기 경위대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제에 대한 공작·무장투쟁 등의 경비·경호·정보·보안·외사 기능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임시정부경찰은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보에 임명사실이 기재되어있는 등 정식으로 인사 체계가 갖춰진 조직으로, 일제가 작성한 사찰·공판 문서에도 임시정부경찰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1925년 11월 1일자 독립신문에서는 “동포의 생명과 재산을 협박하던 ‘강도배’들은 무서워 머리를 감싸고 숨어 버려 그 그림자를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임시정부경찰의 활약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경시기 임시정부경찰인 경위대가 순찰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경찰청 제공)
중경시기 임시정부경찰인 경위대가 순찰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경찰청 제공)

경찰청은 이처럼 임정수립과 함께 우리나라 치안을 담당해온 경찰정신을 기리고, 후배 경찰들에 귀감을 삼기위해 지난해부터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을 발굴하고 있다.

현재까지 찾아낸 총 55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들 중 국내외 독립운동가 출신은 27명이며, 광복군 출신은 23명, 여성 독립운동가는 5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부친과 두 형제가 모두 독립운동 이후 경찰에 투신한 ‘삼부자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이 있었다.

먼저 평북 의주 출신 아버지 송복덕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혈혈단신 이주해 독립운동 대열에 합류했고, 1941년 조선의용대 제3지대에 입대한 후 항일전의 선봉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이후 조선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흡수되어 광복군 제1지대로 재편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소속으로 무장 항일 투쟁을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

또한 1942년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원에 임명되어 임시정부 청사를 경비하고 요인을 보호하는 업무 뿐만 아니라 교민을 보호하고 밀정을 색출하고 방위하는 경비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한편 송복덕의 두 아들 송병철·송병하 형제는 평북 의주에서 거주하던 중 모친이 타계하자 아버지의 부름으로 1935년 초 중국 산해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친의 권유로 1944년 경 광복군 제3지대에 형제가 나란히 입대해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상대로 초모·선전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광복군 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후 장남 송병철은 글씨가 빼어나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 소속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한광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 교육을 수료한 후 중경 광복군총사령부에서 부친과 함께 광복군 활동을 적극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차남 송병하는 입대 후 약 4개월 간의 훈련을 마치고 참위(소위)로 임관, 이어서 정위(대위)로 진급해 제3지대 제2소대장 겸 훈련교관에 임명되어 신입 대원 훈련을 담당했다.

특히 송병하는 광복군 훈련교본 편찬위원으로 일하면서 미·중·일식 교련 방식의 장점을 가미한 훈련 방식을 고안해 군사훈련의 내실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삼부자는 광복 이후 중국 거류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등 국민을 보호하는 임시정부 일원으로서의 사명을 맡았고, 임무를 완수한 후 인천 월미도로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곧 형제는 임시정부경찰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국 치안의 주춧돌을 세우고자 나란히 경찰에 투신하게 된다. 

송복덕 회갑연에서 송복덕과 송병철, 송병하 삼부자 모습. (사진=경찰청 제공)
송복덕 회갑연에서 송복덕과 송병철, 송병하 삼부자 모습. (사진=경찰청 제공)

1946년 먼저 경찰에 입직한 형 송병철은 청량리운수경찰서, 서울철도경찰대 등을 거치며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철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예방과 단속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했다.

한편 동생 송병하는 형보다 1년 늦은 1947년 경찰에 입직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 이후에는 지리산지구 경찰전투사령부 203부대로 발령받았고, 정전 후에는 삼척서 경비계와 경찰기동대 등 주로 경비 부서에서 활약하다 1956년에 퇴직했다.

이처럼 임시정부경찰이었던 아버지 송복덕의 뜻을 이어받아 경찰의 길을 걸어온 그의 두 아들 송병철과 송병하.

임시정부경찰부터 광복 이후 경찰까지, 독립을 위한 헌신을 경찰정신으로 승화시켰던 삼부자의 이야기는 정의로운 경찰정신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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