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임태주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글을 세 번째로 싣습니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속 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 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 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것이 없다.

나는 너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데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말아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동두천 두레마을 감자꽃
동두천 두레마을 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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