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지 못 한다면, 나는 그날로 죽어버릴 것이오.”

1965년 10월의 어느 날,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플로리다주 올랜도 남서부에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의 황무지를 사들였다. 보통 사람들은 그곳에서 늪지와 숲밖에 보지 못했지만, 디즈니는 미래 월트디즈니세계라는 전대미문의 놀이왕국을 보았다. 나아가 디즈니는 단순한 위락단지가 아니라 그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곁에있던 사람에게 물었다.
  
“이곳에 도시를 세우면 멋지겠지요? 교통체증이나 스모그 빈민촌이 없는 미래 도시를 말입니다.” 디즈니사의 부회장 조 포터는 반대했다. “하지만 월트, 도시를 세우려면 수억 달러의 돈이 들어야 할 겁니다.” 디즈니의 갈색 눈이 반짝였다. “조, 비본질 적인 것에는 신경쓰지 말고 본질적인 부분에만 전념할 수 없나요?” 월트 디즈니는 평생 그런 꿈을 꾸었다. 디즈니는 그 자신이 하나의 산업체였다.

첫 번째 왕국
월트가 네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 일라이어스 디즈니는 아이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결정 을 내렸다. 위엄있고 성실한 목수인 일라이어스는 집근처에 세개 살롱이 생기자 화가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이 도시는 아이를 기를곳이 못돼요!” 그는 바로 캔자스시티에서 북동쪽으로 160킬로미터쯤 떨어진 크레인팜으로 알려진 지역 땅을 사들였다.

월트에게는 네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허버트는 17살, 레이먼드는 15살, 로이는 12살, 루스는 두 살로 형제간에 나이차이가 많이났다. 그러다보니 농장에서 함께 놀 친구가 없었던 월트는 농장의 동물 친구들과 노는 습관이 생겼다. 새끼돼지 스키니는 숨바꼭질을 하는 중에 흥분해서 연방 꽥꽥거렸다. 애완견 테리어 피트는 줄다리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마차를 끄는 늙은 말 찰리는 월트가 자신의 등에 타면 기마대의 기마가 된 듯 6,000여 평의 과수원을 향해 늠름하게 걸어갔다. 월트 디즈니에게 동물들은 장난감이자 친구들이 었고 농장은 최초의 놀이왕국이었다. 

일라이어스는 다른 농부들처럼 타르를 칠한 통에 빗물을 받아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월트는 한 물통에서 타르가 햇빛에 녹는 것을 발견했다. 월트는 농장의 벽면을 캔버스 삼아 붓을 들고 타르를 찍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월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단 한 사람 마거릿 아줌마만 월트의 그림에서 천재성을 보고 월트에게 5센트짜리 종이첩과 크레용을 사주었다. 월트는 곧 헛간 앞마당에 앉아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화가가 될거야!” 월트는 항상 그림을 그렸다. 교과서 여백은 뛰어난 솜씨로 그린 다람쥐, 염소, 돼지 등 농장의 친구들로 가득했다. 한 번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꽃병을 대상으로 정물화를 그리게 했다. 월트는 독특한 모양의 꽃을 그렸다. 꽃잎 모양의 입과 속눈썹을 가진 튤립은 예쁘게 입을 삐죽 내민 모습이었다. 또한 수선화에는 말 풍선을 넣어 말하는 모습을 그렸고, 줄기는 다리, 잎은 팔로 표현했다.

1917년, 일라이어스는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고 월트는 매킨리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일주일에 사흘은 저녁마다 미술학원 으로 달려가 직업 만화가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해 매달 50달러를 받으며 일했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화가 우브 아이워크스와 함께 독자적인 광고회사를 운영했지 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첫 달에는 그럭저럭 일이 있어 135달러를 벌었지만, 다음 달에는 거의 수입이 없었다.

우연히 지역영화관에 상영할 1분짜리 광고를 제작 하는 캔자스시티 슬라이드 컴퍼니에서 일거리를 얻었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이 초창기 였던 터라 상당히 조잡하고 현실성이 없었다.

월트는 시험을 시작했다. 계속된 시험으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갔지만, 결국 동영상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예를 들어 소년이 공차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동작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20장의 그림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월트는 우브와 함께 지방의 극장체인용으로 <래프 오 그램>이라는, 지역상품 판촉을 위해 만들어진 1분짜리 영화 시리즈를 만들었다. 

극장 매니저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값이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월트가 피트당 30센트를 약속하자 매니저는 모든 시리즈를 사들이기로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30센트는 제작 원가였다. 그는 이윤을 포함시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브에게는 ‘더 많은 시험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오프 오 그램>은 실패로 돌아갔고, 디즈니는 하숙집에서 쫓겨나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

몇 달 전, 디즈니의 사무실 쓰레기통의 음식물 찌꺼기를 먹기 위해 생쥐 떼가 몰려왔었다. 지우개와 연필은 쥐들의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의 표적이 되었고, 만화가 몇 명이 쥐덫을 놓자고 했다. 그러자 월트는 쥐에게 해가 되지않는 덫을놓아 생쥐 10마리를 잡았고 철망 쓰레기 통으로 널찍한 쥐 사육장을 만들었다. 그는 한밤 중에 작업을 할때, 모티머라고 이름붙인 잘 길들여 진 생쥐가 화판을 돌아다녀도 개의치 않았다. 

모티머는 대담하게 화판 위에서 자신의 수염을 청소하기도 했다. 회사를 간신히 꾸려가던 월트는 마침내 자신의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곳은 할리우드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기차표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은 다음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쥐를 풀어주기 위해 공터로 나갔다. 아홉 마리는 쏜살같이 숲으로 사라졌지만 모티머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도망치지 않았다.

오늘도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는 행복한 주말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내일은 2부로 이어집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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