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모든 우여곡절을 지나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은 1998년 10월 24일이었고 결혼식 장소는 성민교회였습니다. 그때 아내의 나이는 불과 21살이었으니 참 대단한 결단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그런 딸을 제게 맡겨준 장인어른과 장모님 역시 마찬가지고요). 더구나 목회자의 아내로서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했으니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장모님 연배이신 한미경님은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의 후배인 선미는 어머 어머를 연발하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저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충격을 받았으며 특히 제 친구들은 9살 아래의 어린 신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상당한 사람들이 결혼식에 참여하였고 자리가 모라자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 장소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밖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문제가 발생했는데 주례를 맡아주신 분이 주례사를 너무 길게 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긴 주례가 끝나고 축가를 불러주는 친구들이 신랑신부가 회중을 향해 뒤돌아서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는데 주례하시는 분이 승낙을 하지 않았고, 축가가 끝나자마자 왜 뒤돌아서지 않게 했는지에 대해서 또 한참을 설명하였습니다. 정말 최악의 주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은 2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아내는 그날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팔을 앞으로 올린 상태에서 이어진 긴 연설에는 학을 뗄 정도였는데 팔이 저려서 혼이 났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그 저린 것이 다리까지 이어졌고 온 몸이 무리가 된 나머지 겨우 버텼다고 합니다. 앞으로 결혼을 할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줍니다만 절대로 주례사를 길게 하는 분은 사양하시기 바랍니다.^0^.

마침내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순서들을 마치고 녹초가 된 우리 부부는 비로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기에 첫날은 신혼집(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다음에 이야기 하겠습니다)에서 달콤하게 보내고 다음날 주일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에게 인사를 한 다음 마침내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신혼여행 이야기도 다음에^0^).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내는 짐작대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갔습니다. 불평도 없고 짜증도 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켜나갔습니다. 원래 감각이 둔탁했던 저는 그런 아내를 보면서 별다른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힘든 표시를 내지 않던 아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많은 해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둔한 정도가 너무 심각했던 것입니다.

아내를 고통스럽게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내가 아가씨 시절을 확실하게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한참 장난치며 놀러 다닐 때 아내는 묵묵히 사모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으니 그것이 짐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눈치라도 있으면 아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친구들과 만나러 가게도 하고 돈을 조금 주어서 맛있는 것을 함께 사먹게도 했으련만 그런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저의 모습입니다.

사실 아내도 너무 순진하기만 했습니다. 결혼 후 수년 동안 빠지지 않고 아침밥을 차려주었으며 저에 대해 신경쓰고 챙겨주느라고 그 긴 시간 동안 친구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가슴앓이 하고 뒤늦게야 자신에게는 꿈 많은 아가씨 시절이 없었고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고 말해준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20대 초반과 중반, 그리고 후반까지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자신의 친구들과 더불어 유쾌한 시간들을 보냅니까?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많은 경험들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 모든 시간들을 저라는 한 사람에게 저당 잡힌 채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런 아내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니 참 못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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