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핫한 수입품은 무엇일까?

근대의 수입품은 낯선 외국의 문화와 발전된 기술력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물건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문물들로는 안경, 유리거울, 망원경, 자명종이 있습니다. 이러한 서양문물들은 중국 무역선과 일본 왜관을 통해 조선에 반입되었습니다.

◆ 독서가 양반들의 핫 아이템 ‘안경’

국내 문헌에서 안경에 대한 기록은 1606년 이호민이 집필한 <안경명>의 ‘양의 뿔로 만든 안경’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이후 1740년 이익이 집필한 <성호사설>에서 안경은 17세기 무렵부터 중국에서 조선으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조선에서 자체 제작되면서부터 빠르게 조선사회에 보급되었습니다.

안경의 주요 소비층은 양반 남성들이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조선 학계에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긴 정조와 정약용도 안경을 썼죠. 당시에는 자신보다 연장자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예절이었다고 합니다. 안경은 19세기 무렵에 이르러서야 정밀한 수작업을 하는 장인과 바느질을 하는 여성들에까지 보급되었습니다.

◆ 상류층의 귀중품이었던 ‘유리거울’

유리거울은 1766년 중국을 방문한 한 역관이 러시아 무역상들에게 유리거울을 구입해 반입된 이후, 중국을 거쳐 조선에 퍼졌다고 전해집니다. 서양에서도 유리거울이 발명된 초기에는 소수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는데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양반들 사이의 귀중품으로 유행했습니다.

유리거울은 기존의 청동거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형상을 비추어주었기에
수입 초기부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조선 후기 유명 화가 강세황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주름과 음영, 수염 표현 등이 정교한데요. 전문가들은 그 정도의 묘사를 하려면 거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유리거울은 19세기 초반 이후부터 대중들에게까지 보편화되었다고 해요.

◆ 별난 물건 취급받았던 ‘망원경’

<인조실록>에 의하면 망원경은 정두원이 1631년 중국에서 다른 서양 문물들과 함께 가져온 물품이었는데요, 이후 관상감의 관원 허원과 김태서가 일식과 월식을 관찰하기 위해 공금을 들여 중국에서 망원경을 구입했다고 전해집니다.

망원경은 천문학적 연구나 군사적 목적의 원거리 항해에 활용될 수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 전무한데요, 당시 보수적인 학자들은 희한한 물건에 빠져 도덕적 심성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탓에 망원경은 전래된 이후 오래도록 별난 물건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 농경사회에서는 불필요했던 ‘자명종 시계’

자명종은 1631년 정두원이 중국에서 망원경과 함께 가져온 물품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에서 자명종 제작의 기술을 습득하면서 복제품이 생겨났고, 19세기부터 더욱 다양한 자명종이 수입되었지만 그다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오랫동안 농경중심의 사회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하는 데에는 24절기만 알아도 충분했기에 굳이 시간을 분 단위를 쪼개어 측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노동량을 측정해 임금을 지불하는 산업사회에 이르러서야 시계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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