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났던 달이니 내가 겪은 6.25를 이야기한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 인민군이 줄을 지어 마을로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우리 가정은 외갓집 행랑채에 살고 있었는데 외갓집이 부농이어서 집이 크고 마당이 넓었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온 인민군의 숙소가 되었다. 인민군이 들어오고 그들의 세상이 되니 지역에서 살고 있던 동조자들이 기를 펴고 다니게 되었다. 주로 머슴살이 하던 분들, 빈농인 분들, 평소에 마을에서 소외되어 있던 분들이 완장을 찬 채로 어깨에 힘을 넣고 다녔다.

어느 날 새벽녘 말소리에 잠이 깨어 들으니 외갓집에서 머슴으로 있는 분이 어머니를 포섭하려고 설득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머슴의 말인즉 이제 새 세상이 되어 없이 살던 사람들이 주인이 세상이 되는 때가 오게 되었으니 어머니도 자신들의 편이 되어 달라는 소리였다. 어머니가 낮고 침착한 소리로 답하였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어서 공산당은 안합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을 부인하잖아요. 우리가 친정 행랑채에 얹혀 살아가는 가난한 살림이어도 공산당은 안 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니까 설득하러 왔던 분은 입맛을 다시면서 사라졌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 집안만 교회를 다녔기에 지방 빨치산들에게 숙청 대상이 되었다. 이틀 뒤면 인민재판을 열어 우리 가정을 재판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이다. 한밤중에 어머니께서 낮은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홍아, 홍아, 일어나 마당을 보아라."

어머니께서 속삭이듯이 말하시는 말을 듣고 넓은 마당을 보았더니 마당에 쌓아 놓은 퇴비용 풀단들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마당에 쌓아놓은 풀단들이 슬슬 움직이며 인민군들이 잠들어 있는 안채 쪽으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께서 숨을 죽이며 <국군이 온가 봐> 하시기에 우리 형제들은 달빛으로 마당을 살폈더니 풀단이 슬금슬금 기어 인민군 장교들이 머무는 본부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10 여분이 지난 후에 갑자기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비명 소리 고함 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참 후에 조용하여 지더니 인민군들은 죽고 도망치고 그 자리를 국군들이 차지하였다. 다음 날이 되자 마을 사람들 모두 행복하여져서 국군들에게 음식도 해다 주고 빨래도 도와주며 살갑게 지났다. 우리 집안은 그렇게 이틀 차이로 난을 면하게 되었다. 내가 겪은 6.25의 한 면이다.

동두천 두레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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