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결혼 전이지만 그냥 아내로 부릅니다)와 교제를 나누기 시작한 이래로 양쪽 부모님들은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장모님(미리 그렇게 부르겠습니다)이 가장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눈치가 워낙 빠른 분이라서 아내의 태도를 미심쩍게 바라보고 있던 장모님이 한번은 아내에게 제 이야기를 느닷없이 꺼내면서 저랑 사귀냐고 물었는데 아내는 그렇다고 대답을 해버린 것입니다.

곧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장모님이 아내를 집안에 가두어버리고 외출금지를 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더니 제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뜸을 들이다가 장모님은 무겁게 입을 열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교제를 허락할 수 없다면서 헤어지라고 했습니다. 그게 서로를 위해 좋겠다는 것입니다. (후에 알고 보니 어렵게 사는 전도사에게 시집을 보냈다가는 너무 고생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빨리 알게 된 것이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장모님의 불허가 제게 충격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서운하다거나 못마땅하다거나 답답하다거나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리라 예상을 하고 만난 탓인지 마음이 무덤덤했던 것입니다. 저는 장모님에게 분명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저를 보고 장모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끝을 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얼마나 바보같으며 세상물정을 모르는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한심하게도 장모님께 한 마디를 덧붙인 덕에 지금까지도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있는 장모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해서 쓸 생각으로 돈을 좀 모았습니다. 600만원 정도 됩니다.” 오 마이 갓.

사실 가난한 전도사들의 수입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달 수입이 50만원 내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600만원을 모았으니 저는 그게 무척 큰돈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장모님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많이 모은 것을 알고 놀란 모양이라고 생각한 저의 모습은 어리석음의 극치라 할 것입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그런 표정을 짓고 말문이 닫힌 것인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꺼냈는데 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이 그때의 장모님 표정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 표정이 감탄의 표정이 아니라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의 표정이라는 것입니다. 장모님은 그때 잠잠히 있었는데 친구들은 한 마디씩 던집니다. 그러고도 나중에 결혼을 승낙했으니 대단하다고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사실 그 600만원도 다 간수하지 못한 채 결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인데 그 중 절반가량을 꺾어서 등록금으로 사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300만원의 돈을 가진 채로 결혼을 한 셈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돈이 행복의 근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아무래도 조금 더 넉넉한 생활을 하는데 보탬이 되겠지만 돈이 화목한 가정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며 서로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결혼 10년차로 접어드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 가지고 부부 사이에 의가 상하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 서운해 하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나 다른 면에서 돈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가져야 하며, 큰일을 앞두고 준비해둔다면 유익한 법인데 저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자를 결국 딸의 사위로 받아들여준 장모님도 괜찮은 분인 것 같습니다. 아내는 3일 가량 외출 금지 명령을 받고 집안에 갇혀 지내다가 3일이 지난 후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덕분에 아내와의 데이트는 계속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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