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나던 시절에 대한민국의 국민 소득이 겨우 80달러였다. 그때 북한은 240달러였고 필리핀은 800달러였다. 장춘체육관이 필리핀이 후진빈국 코리아를 돕는다고 지어준 건물이다.

그때 북한의 국민 소득이 240달러였던지라 남한보다 3배 더 잘 사는 처지였다. 그런 국력이 역전되기 시작하기는 1970년대 들면서부터이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이 1단계 지나 2단계로 접어들면서 경제력이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5.16 군사 혁명이 성공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소위 혁명 주체들 사이에서 앞으로 국가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하여 나갈 것인가를 토론하였다 한다. 토론 과정에서 두 파로 의견이 갈라졌다. 한패는 민족 경제를 일으켜 자조 자립하는 체제로 나가자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폐쇄적인 민족 경제로 나가게 마련이었다.

다른 한패는 개방경제체제를 도입하여 세계 경제로 나가자는 주장이었다. 혁명 주체였던 소장 장교들은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강하였던지라 폐쇄적인 자주 경제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였다. 이때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이 방향을 정하여야 하였다. 이때 박정희 장군은 경제인들의 자문을 구하였다. 그때 자문을 받은 경제인들이 허심탄회하게 권하였다.

"박 장군님, 민족자주경제로 나가게 되면 북한 꼴이 됩니다. 남한은 자원이 부족한 자원 빈국입니다. 이런 나라가 활로를 열어 나가려면 개방경제체제를 선택하여 수출 주도 국가로 나가야 합니다."

박정희 장군의 선택이 민족의 명운을 결정케 되는 처지였다.

박정희는 이런 때에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향후 진로를 결정한 결정이었다. 그는 경제인들의 자문을 받아들여 세계화를 추구하는 개방경제체제 수출 주도형을 선택하였다.

그때의 결정이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게 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가 군사 재판에서 15년 형을 받고 13개월 옥살이를 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는 사심 없이 국가 발전과 민생 경제에 헌신하였던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가 민주주의 원칙을 깨뜨리고 독재 정권을 추구하였던 과오까지 덮이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은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문재인이든 잘한 것과 잘못한 것들을 분명히 구분하여 평가하여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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