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645회]
제가 오래전에 읽은 실화입니다. 익히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리는 생각으로 보냅니다.
미국의 한 부부가 겪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어느 해 휴가철이었다.
사교계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부부가 어느 파티에 참석하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저예요!
베트남에서 군복무가 끝나서 집에 돌아가려고요!"
"정말 잘 되었구나!
그럼 집에는 언제 오니?"
"그런데 친구 한 명을 집에 데려가고 싶어요!"
"물론 괜찮다!
며칠 간 함께 지내렴!"
"엄마!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해 미리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어요!
다리는 모두 잘렸고 한쪽 팔이 없어요!
얼굴도 심하게 손상 되었고,
눈과 귀도 한 쪽 씩 잃었어요!
별 볼 일 없긴 하지만 쉴 곳이 꼭
필요한 친구예요!"
그의 어머니는 머뭇거렸다.
"쉴 곳이 필요하다고? ...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 같이 지내거라!"
"제 말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엄마!
전 그 친구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이에요!"
"얘야!
그 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어서 와서 휴가를 함께 보내자!
그리고 네 친구 말인데. 사정은 안됐지만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또 뭐라고 설명할 거니?
네 아빠에게나 친척들한테도…"
이야기를 미처 끝내기 전에
아들은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부부가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캘리포니아 한 마을의 경찰서에서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가 남겨 있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경찰서장을 찾았다.
경찰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길에서 한 젊은이를 발견했습니다!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죠!
눈과 귀도 한 쪽 씩 없었는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더군요!
신원을 확인해보니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라면,
그 젊은이를 두 팔 벌려 맞이할 수 있었을까?
불쌍한 젊은이를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이 있었다면 그 아들의 전화가 마지막은 아니었을겁니다
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처럼 남의 곤경을 받아 들이는 넓은 마음이 아쉽게 여겨집니다.
우리는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환영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15:18-20, 25-32)
5일은 어린이 날 입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모든것을 내려놓고 주께 의지하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