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에서 삼농(三農)에 대하여 하농, 중농, 상농이 삼농임을 언급하고 각각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오늘 글의 주제는 삼학(三學)이다. 삼학(三學)이라 함은 하학(下學), 중학(中學), 상학(上學)을 일컫는다.

하학이라 함은 학문을 하되 자신의 입신출세를 동기로 삼는다. 그래서 학문을 익힌 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에 해를 끼치면서도 자신의 영달과 이권만을 챙긴다. 이런 학자들이 생각 외로 적지 않다. 배웠기 때문에 우환거리인 학자들이 예나 지금에나 끊이지 않는다.

농사꾼 중에 게으르고 탐욕스러워 논밭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세월을 허송하여 농사를 망치는 농사꾼이 하농(下農)이듯이 학자들 중에서도 삐뚤어진 심성으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런 학자들일수록 기회 포착에는 천재적이어서 그 시대의 틈을 노리고 있다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움직여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공동체를 그르친다.

중학(中學)은 중농(中農)이 알곡 농사를 잘 짓듯이 자신이 닦은 학문으로 인하여 사회적 기반을 얻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다. 그러나 중학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안정된 위치를 확고히 함에만 관심이 있지 대의명분 있는 시대정신을 구현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의 학자들의 절대 다수가 이 부류에 속한 듯싶다.

이에 비하여 상학(上學)은 다르다. 학문을 익혀 그 학문을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한 기회로 삼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선한 길로 이끌고 국가에 보국함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국가와 역사에 봉사함을 목표로 삼는다. 때로는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무릅쓰고서도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손해를 감수한다.

우리 두레마을 공동체에 대학 교수직을 은퇴한 학자들이 여럿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뜻 있는 일에 자신이 쓰임 받고자 하는 상학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학자들을 밤낮으로 대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그런 학자들을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역시 좋은 사람들도 많구나, 이런 좋은 사람들로 인하여 그나마 세상은 살만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두천 두레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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