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5번(작품번호 79번) '뻐꾸기' 2악장 연주입니다. 25번은 베토벤 스스로 '쉬운 소나타'라 칭했을 만큼 간결하고 작은 형식의, 소나티네에 가까운 소나타이고, 맑은 정서를 품은 1,3악장에 대비되어 2악장은 다소 진중한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여느 작곡가들처럼 연주자로 먼저 명성을 얻은 베토벤은 당대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으며, 그의 다른 작품 장르들이 드문드문 혹은 한 번에 몰아 작곡된 데에 비해, 피아노 작품들은 그의 평생에 걸쳐 꾸준한 작곡이 이루어졌습니다. 

훗날 이 피아노 작품들은 그의 작품세계에, 나아가 서양음악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 되었으며, 피아니즘의 절정이자 음악의 절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류에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베토벤에게 피아노라는 악기는 무한한 음악적 상상력을 다루는 가장 주요한 도구였고, 그의 피아노 작품이 가진 시대적, 예술적 의미와 영향력은 이루 나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베토벤은 그가 일생 동안 존경했던 바흐와 모차르트를 연구하고 그들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궁극에는 그 누구의 음악과도 차별된 독창적 영역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고전을 완성한 동시에 무궁한 미래를 개척한 개혁가이자 혁신자였고, 슈베르트나 차이콥스키처럼 선율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기보다는 선율을 '전개해 나가는' 예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선율미 역시 과소평가 된 면이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또한 동시에 한없이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작품 곳곳에 담아내었고, 그의 강인함 만큼이나 그의 순수함을 발견하는 것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점입니다. 후대의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있어 그가 일종의 '락스타'와 같은 무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건, 혁신성과 동시에 그의 이러한 음악적, 인간적 매력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는 연주자로서 즉흥 연주의 달인이었고, 작곡가로서는 즉흥곡, 환상곡 풍의 변주 양식에도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쉼없이 악상이 착상되는 성향은 아니었고, 바흐처럼 치밀하긴 하였지만 그처럼 단 시간에 작품들을 마구 쏟아내는 유형도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창작한 작품의 수는 그 위대성에 비해 의외로 방대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바흐와 베토벤이라는 두 이름이 서양음악사에, 나아가 인류의 음악 역사에 가지는 의미가 가히 상징적임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바흐가 세워둔 음악의 위대한 토양은 베토벤에 의하여 무궁한 미래성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바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영광을 음악으로 드러낸 작곡가였다면, 베토벤은 인간의 위대함을 삶과 음악으로 치열하게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평생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신의 사명을 받은 어떤 절대적 인간으로 자각한 베토벤이었지만, 실상 그는 신론자보다 무신론자에 훨씬 가까운 인물이었고, 청력을 상실한 이후 그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인간 승리'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음악가로서의 사형 선고인 청력 상실 이후 그가 남긴, 오히려 더 위대한 작품을 접하고 있노라면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에 싸이게 됩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6회 (2018.09.08. 나루아트센터)
- 2010년 3월~ 건국대병원 <정오의 음악회> 고정 연주
- 코리아뉴스타임즈 <김별의 클래식산책> 2017~2018 기고

2019년 신년기획 - 피아니스트 김별의 '클래시컬 뮤직'은 매월 1일, 15일마다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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