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슈베르트 피아노 소품집 '악흥의 순간' (Op.94 D.780) 3번 '러시아의 노래'입니다. 

국내에는 배우 이은주의 유작 주홍글씨(2004)에서 그녀가 직접 연주한 곡으로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졌습니다.


슈베르트가 사망한 1828년 봄에 두 권의 형태로 출판된 '악흥의 순간'은, 아름다움과 슬픔에 대한 그의 탐닉을 함축적으로 담은 작품으로, 각기 다른 시기에 작곡된 개별적 곡 구성임에도 그런 '탐닉'이라는 요소로 인해 강한 유기성을 띠고 있습니다. 간결한 형식에 내면의 감정을 투영한 이러한 소품 모음집은 먼저는 그가 숭배하던 베토벤의 '바가텔'에서 발아, 슈베르트에서 꽃이 피고, 멘델스존의 '무언가' 슈만의 '노벨레테' 브람스의 '인터메초'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 등 여러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흐와 베토벤이 고난과 역경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면, 차이콥스키와 슈베르트는 비참과 곤궁의 대표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실제 그는 늘상 가난했고 예술적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으며, 31세에 요절했습니다. 그의 음악 활동을 반대하던 아버지와의 불화로 평생 가족과 떨어져 유리했고, 죽기 전 가족들과 화해가 이루어졌으나 바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곧 사망합니다.


그러나 널리 퍼진 이미지와는 달리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던 이들이 실은 그의 곁에 늘 존재했고, 그들이 슈베르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기막힌 불운의 연속으로 그것은 끝내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돈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얽히기를 거부한 슈베르트 본인의 가치관도 몫을 하였고, 후대에 그의 작품성을 알아본 로베르트 슈만의 헌신으로 그는 그제에서야 합당한 영광을 부여받게 됩니다.

차이콥스키와 함께 멜로디의 영역에 특별한 천재성을 보인 슈베르트는 특유의 직관적, 즉흥적 작곡법으로 유명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짧은 생애에 무려 988개의 작품집을 완성했고, 그의 작품은 형식과 구조적으로는 느슨하나, 그 어느 작곡가보다 뛰어난 멜로디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중성과 예술성 어느 하나 한치의 모자람 없는 차이콥스키와 슈베르트의 멜로디는, 여전히 음악에 있어 넘볼 수 없는 고유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일생 동안 베토벤의 전적인 숭배자였습니다. 그는 베토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 재능을 사모했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소나타를 남기는 것을 일생의 목표점으로 두었습니다.

그랬던 그는 베토벤이 사망한 바로 이듬해 사망하였는데, 그의 죽음과 그 사인이었던 알 수 없는 병은, 베토벤의 죽음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유력히 여겨집니다. 그에게 베토벤의 죽음은 마치 자신의 죽음과도 같았고, 그는 죽으면서까지 베토벤의 이름을 부르며 사후에는 유언 대로 베토벤의 무덤 옆에 안장 되었습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불리지만, 그의 천재성과 열정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주로 피아노 작품들에서입니다. 특히 (미완성 한 곡을 포함한)2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 사후에 발견된 최후의 3곡은, 바로 베토벤 사망과 자신의 사망 사이 짧은 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으로, 드라마틱하게도 그의 일생 목표였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마침내 뛰어넘은 작품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그렇게 예술가에 있어 슬픔과 생의 위기 만큼 강력한 영감은 없다는 걸 증명한 [19번 다단조 D.958] - [20번 가장조 D.959] - 그리고 최후 소나타인 [21번 내림나장조 D.960]은, 건반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 평균율 -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의 대열에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피아노 소나타 장르의 최종 완성자로 베토벤과 함께 그를 두게끔 만드는, 한 예술가의 위대한 혼과 자아가 고스란히 보존된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연주회 <마음 연주회> 206회 (2018.09.08. 나루아트센터)
- 2010년 3월~ 건국대병원 <정오의 음악회> 고정 연주
- 코리아뉴스타임즈 <김별의 클래식산책> 2017~2018 기고

2019년 신년기획 - 피아니스트 김별의 '클래시컬 뮤직'은 매월 1일, 15일마다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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