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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고사성어 43부 진복론천(秦宓論天)
삼국지 고사성어 43부 진복론천(秦宓論天)
  • 박철효 독도사랑회 사무총장
  • 승인 2018.12.0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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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96회]      

진복론천(秦宓論天)은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이다. 이 논쟁에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 진복과 장온의 인연은 상생이다. 두 사람은 하늘에 대한 담론으로 인해 '촉'과 '오'에서 각자 명성을 더욱 더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복(秦宓 ?~226년)은 '촉'의 인물로 자는 자래(子勑)이고 익주 광한군 면죽현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재능과 학식이 높아 '주'와 '군'의 초빙을 받았다. 그러나 '병'을 칭탁하며 나가지 않았다. 대신 익주목 유언(劉焉)에게 상서를 올려 같은 군의 명망 높은 유자 임정조를 추천했다.

유장(劉璋)이 익주목이 되고 같은 군의 왕상이 치중종사가 되자, 편지를 보내 진복에게 유장을 만나기를 권했다. 하지만 진복은 유장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들어 초야에 묻힐 것이라고 답했다.

훗날 왕상이 엄군평과 이홍의 사당을 세우자, 편지를 보내 이것이 같은 고향 사람을 후대하는 것이라 하면서도 익주 문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위해 사당을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권(李權)이 전국책을 빌려 식견을 늘리고자 했다. 진복은 전국책이 종횡가의 책이므로 좋지 않다고 했다. 유비(劉備)가 익주를 평정하자, 광한태수 하후찬(夏侯纂)이 진복을 불러 사우좨주로 삼고, 오관연을 겸하게 하며 중부(仲父)라 불렀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질병을 칭탁하여 출사하지 않았다. 

이후 익주에서 불러 종사좨주로 삼았다. 유비가 제위에 오른 후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며 동오를 치려했다. 이때 진복은 천시를 살펴 이롭지 못할 것이라 하여 유폐 되었다 풀려난다.

224년 건흥 2년 제갈량(諸葛亮)이 익주목을 겸하면서 진복은 별가가 되었고, 좌중랑장, 장수교위가 되었다. 장온(張溫)이 오나라에서 사신으로 왔을 때 장온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며 박식함을 보여 장온을 감복케 했다. 그는 대사농이 되었으나 226년 동 4년에 죽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진복은 유장을 섬긴 문신으로 후에 촉에 귀순했다. 유비에게 성도를 내어주기 전 사자로 온 간옹(簡雍)의 거만한 태도를 꾸짖고 한편으로 유장에게 유비에 투항 할 것을 권했다. 유비가 관우(關羽)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를 치려 할 때는 반대하였다.

장온(張溫 193년~230년)은 '오(吳)'의 정치가로 자는 혜서(惠恕)이며 양주(揚州)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절조가 있었고 용모도 매우 탁월했다. 손권(孫權)이 공경들에게 “장온은 현재 누구와 견줄 만한가.”라고 물을 정도였다.

대사농 유기(劉基)는 전종(全琮)의 무리에 견주었다. 하지만 태상 고옹(顧雍)은 유기가 “장온을 잘 모르고 한 말이다.”며 장온에게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말했다.

손권은 장온을 불렀다. 장온의 문사와 점대는 보는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손권도 태도를 고쳐 예를 더했고, 장소(張昭)는 특히 장온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의랑, 선조상서가 되었고, 태자태부로 승진 했다. 손권에게 태자중서자로 덕행이 출중한 사람을 쓰도록 권하여, 진표(陳表) 등이 기용되었다.

장온은 32세에 보의중랑장(輔義中郞將)이 되어 사자로서 촉에 파견되었다. 떠날 때 진복(秦宓)과 문답을 하여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손권은 장온이 '촉'의 정치를 찬미하는 것을 속으로 꺼렸다. 또한 장온의 명성이 높아 따르는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마음으로 인해 장온을 죽이려 했다.

마침 장온이 추천한 상서 글염(曁艶)이 실각 하여 자결했다. 글염이 장온과 줄곧 뜻을 같이 하였고 편지를 주고 받았으므로 장온에게도 죄가 미친것이다. 손권은 즉시 장온을 가뒀다. 

이유는 장온이 글염과 함께하여 죄를 지었고, 장온이 예장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다 광릉 싸움에 명령을 받고도 참전하지 않았으며 은례를 멋대로 썼고 가원(賈原)을 추천하고 장강(蔣康)으로 가원을 대신하게 한 점을 들어 쫓아내 본군의 하급 관리로 삼았다.

그런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낙통(駱統)이 장온을 위해 나섰다. 표를 올려 손권이 장온의 죄로 지적한 점을 낱낱이 변호했으나 손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6년 후 장온은 병으로 죽었다.

여요 사람 우준(虞俊)은 장온이 재능은 풍부하지만 지혜는 없고, 화려하지만 실질이 없으며, 결국 사람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아 실각 할 것을 예견하고 탄식했다.

제갈량(諸葛亮)은 우준의 말을 듣고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장온이 실제로 그렇게 되자 우준에게 찬탄했다. 제갈량은 한동안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다 “알았다! 그 사람은 청탁과 선악의 구분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장온은 재능은 탁월했지만 자신을 지키는 지혜가 부족하여 화를 입었다고 평했다.

오늘도 비는 내리지만 진복과 장생의 상생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고 성과있는 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사진출처 : 현암사 삼국지사전
사진출처 : 현암사 삼국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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