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90회]

물과 불은 서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두 사물이 서로 융합 할 수 없거나,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거나 화목하지 못해 서로 화합 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악함과 올바름의 차이는 마치 물과 불의 관계와 같아서 근원이 같을 수 없고, 더불어 성 할 수도 없는 것이다.(且夫邪之與正, 猶水與火, 不同源, 不得幷盛.)」

이 말은 《잠부론(潛夫論)》에 나오는데, 물과 불의 관계와 같다는 말에서 ‘수화불상용’이 유래했다. ‘유여수화(有如水火)’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 · 촉서(蜀書) 〈위연전(魏延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군 위연은 성격이 오만하여 모두가 그를 피하였지만, 오직 장사 (長史)인 양의(楊儀)만은 그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위연은 양의의 이런 태도에 매우 화를 냈고 두 사람은 마치 물과 불의 관계 같았다.

‘수화불상용’은 ‘수화불용(水火不容)’ 혹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라고도 한다.(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참조)

사례
두 사람은 사사건건 맞서는 ‘수화불상용’의 사이였기에 같은 조직에 함께 있을 수가 없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얼음빙/숯탄/아니불/서로상 · 얼굴/용납할 용]

얼음과 숯(불)은 서로 용납 할 수 없다. 서로 어긋나 맞지 않는 사이나 서로 화합 할 수 없는 사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동방삭(東方朔)은 초(楚)나라의 우국 시인 굴원(屈原)을 추모하여 〈칠간(七諫)〉 7수를 지었는데, 그 중 〈자비(自悲)〉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얼음과 숯이 서로 같이 할 수 없음이여 / 
내 본디 목숨이 길지 못한 것을 알았노라 / 
홀로 고생하다 죽어 낙이 없음이여 / 그대 연수(年數)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노라.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 회왕(懷王) 때에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어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하였으며, 삼려대부(三閭大夫, 소(昭) · 굴(屈) · 경(景)의 세 귀족 집안을 다스리던 벼슬)에 올랐으나, 법령 입안 때 근상(靳尙) 등 정적들의 중상모략으로 왕의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굴원은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을 주장했으나, 회왕은 연횡책을 받아들여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와 화친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진나라에 기만 당했으며, 양국의 강화를 위해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그 후 진나라의 소왕(昭王)이 회왕에게 진나라 방문을 요청했다. 굴원은 이를 반대했지만 회왕은 막내아들 자란(子蘭)의 권유에 따라 진나라를 방문했다가 억류당해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고 말았다. 

큰아들 횡(橫)이 그 뒤를 이었고[경양왕(頃襄王)], 막내아들 자란은 영윤(令尹,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굴원은 자란이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하다가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장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굴원은 멱라(汨羅)에 몸을 던져 죽었다. ‘빙탄불상용’은 이처럼 굴원의 강직한 충성과 간신들의 아첨이 서로 용납 될 수 없음을 비유하여 쓴 말이다.

사례
두 사람 모두 대통령 병에 걸린 ‘빙탄불상용’의 라이벌이라서 함께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당을 쪼개 각자의 길을 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오늘도 수화불상용의 삶이 아닌 소통하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알찬 수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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