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88회]

방덕(사진출처 : CCTV 삼국지)
방덕(사진출처 : CCTV 삼국지)

세한지송백(歲寒之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는 뜻이다. 세한지송백은 관우와 방덕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말이다.

조조에게 투항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관우와의 전투에 참여한 방덕이 패한 뒤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방덕이 관우에게 잡혔을 때 항복했더라면 처형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조에게 항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관우에게 항복한다고 크게 흠이 되지 않을 입장이었다. 더구나 마초가 유비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방덕은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관우는 방덕에게 맞은 화살로 인해 죽음의 길로 들어섰고 방덕은 관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인연으로서 두 사람의 인연은 모두 상극의 인연 이었다.

방덕(龐德 ?~219년)은 후한 말의 무장이다. 
자는 영명(令明)이며 옹주(雍州) 남안군(南安郡) 환도현 사람이다. 

마초(馬超)의 부장으로 202년 건안(建安) 7년에 장기(張旣)의 설득으로 파견되어 종요(鍾繇)와 함께 원상(袁尙)을 공격하였다. 이때 원상의 장수 곽원(郭援)을 죽였다.

211년 건안 16년에는 동관(潼關)에서 조조 (曹操) 와의 싸움에서 활약하였으나 패배하고 장로에게 의탁했다. 이때 방덕은 잠시 병중이었다. 그로인해 마초가 서촉의 지원군으로 떠날 때 따라가지 못하고 한중(漢中)에 남아 있었다. 

이후 마초는 유비(劉備)에게 투항하였다. 215년 건안 20년 조조가 한중을 침략했다. 방덕은 장로(張魯)의 요청으로 조조와 싸웠다. 조조는 방덕의 용맹을 칭송하며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후 가후의 계략에 따라 방덕을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렸으나 붙잡힌 방덕은 항복하여 상장(上將)이 되어 조조에게 크게 중용되었다. 조인(曹仁)의 부장이 되어 후음의 반란을 토벌했다.

219년 건안 24년 관우(關羽)가 조인을 공격했을 때 방덕이 관우를 화살로 쏘아 맞혔다. 사람들이 방덕을 백마장군(白馬將軍) 이라며 용맹을 칭송하며 두려워했다.

방덕은 우금이 증구천에서 진채를 세웠을 때 관우가 수공으로 공격 할 것을 예상하고 우금에게 미리 대피 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우금은 방덕의 말을 무시하였고, 방덕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언덕 위로 올라가 관우에게 항전하였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배를 타고 도주하였으나 결국 관우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하고 만다.

오늘도 '세한지송백'의 절개는 아니지만 삶에 활력있고 최선을 다하는 힘찬 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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