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66회]  

'돼지와 개'를 뜻하며 어리석고 불초한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도(官渡)의 전투에서 원소(袁紹)를 물리쳐 화북의 패권을 장악하고 중국 북부를 평정한 조조(曹操)는 건안(建安) 13년(208년) 7월, 목표를 남쪽으로 돌려 형주(荊州)와 강동(江東) 공략을 시작했다. 

그해 8월, 형주의 유표(劉表)가 죽고 그의 막내 아들 유종(劉琮)이 유표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조조의 백만대군이 형주를 향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종은 비밀리에 사자를 보내 조조에게 항복해 버렸다. 

순조롭게 형주를 접수한 조조는 내친김에 눈에 가시인 유비(劉備)를 제거하기 위해 유비의 근거지인 신야(新野)로 말머리를 돌렸다. 

늦게야 이 사실을 안 유비는 급히 강릉(江陵) 으로 퇴각했다. 유비가 강릉으로 퇴각한다는 사실을 안 조조는 5천의 기병을 거느리고 하루 낮 하루 밤 3백리를 달려 유비의 뒤를 추격하여 장판파(長坂坡)에서 유비를 공격하였다. 

유비는 대패하여 지름길을 따라 유표의 장남 유기 (劉琦)가 주둔하고 있는 하구(夏口)로 도망했다.

조조는 강릉을 점령한 후 유비를 치기위해 다시 말 머리를 하구로 돌렸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 유비는 손권(孫權)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제갈량 (諸葛亮)을 파견했다. 

당시 손권의 강동지역은 장소(張昭)를 주축으로 하는 주화파와 주유(周瑜)와 노숙(魯肅)을 주축으로 하는 주전파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손권은 이 두파의 사이에서 아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가 손권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손권은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와 싸우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3만의 군사를 주어 유비의 수상부대와 공동작전을 펴 조조의 군대와 대전하도록 했다. 유비의 군사 1만, 그리고 유기의 군사 1만을 더해도 5만 밖에 안 되는 병력이었다.

한편, 적벽(赤碧)에 포진하고 있던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북방 출신으로 남방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병이 든 데다가, 대부분이 배를 타 본 일이 없어 배 멀미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한겨울인 12월의 찬바람은 바다같이 넓은 장강에 드높은 파도를 일게 했으며, 이 파도에 배가 심하게 요동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이의 해결책으로 배를 모두 쇠고리로 연결한 후,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배가 파도에 요동치지 않도록 했다.

주유와 유비의 연합군은 화공(火攻)으로 나왔다. 먼저 황개(黃蓋)를 거짓으로 항복 하도록 하여 몽충(蒙衝)과 투함(鬪艦, 전함)을 조조의 선단에 접근시킨 후, 화공을 퍼부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동남풍에 조조의 선단은 불길에 휩싸였고, 적벽일대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조조는 대패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허창으로 되돌아 갔다. 이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그 후 조조는 유수(濡須)를 침공했는데, 조조는 손권의 군사들을 바라보면서 그 질서정연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曹公望權軍, 嘆其齊肅.) 

이 이야기는 삼국지(三國志) · 오서(吳書) 손권전(孫權傳)에 나온다. 배송지(裴松之)는 바로 이 구절에 오력(吳歷)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았는데, 여기에서 ‘돈견’이 유래했다.

조조는 선박들과 무기들과 군사들의 대오가 질서 정연함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들을 낳으려면 손중모(孫仲謀)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

유경승(劉景升)의 아들은 돼지와 개 같은 놈이다!” (裴松之注引吳歷曰, 公見舟船器仗軍伍整肅, 喟然嘆曰, 生子當如孫仲謀. 劉景升兒子, 若豚犬耳.) 중모는 손권의 자이고, 경승은 유표의 자이다.

사례
결혼식이 끝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참석한 하객들에게 감사의 서신을 보내는데, 그 서신에는 ‘바쁘신 중에도 돈견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문구를 많이쓴다.

오늘도 부모님께 잘 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돈견'의 불초한 자식이 되지않는 자식다운 삶을 사는 주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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