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62회]    

난공불락은 공격하기가 어려워서 좀 처럼 함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려울 難/칠攻/아닐不/떨어질 落] 

난공불락의 유래는 삼국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공격 할 때 학소가 지키고 있는 진창성이 쉽사리 빼앗기지 않자 감탄하면서 '난공불락이로다' 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유래된 난공불락은 해결이 어렵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비슷한 의미로 철옹성이 있다.

철옹성{鐵甕城)은 고려시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에 쌓은 성이다. 영변읍을 둘러싸고 있어서 영변읍성이라고도 하며, 연주성이라고도 한다. 

철옹성은 본성, 약산성, 신성, 북성으로 이루어져 그가운데 약산성과 본성은 고려때 쌓았고 신성은 1683년에 본성의 서남쪽을 가로질러 막았으며, 본성은 1864년에 이 성의 서북부에 쌓았다. 

본성의 둘레는 14㎞이고, 신성은 3㎞, 북성은 2㎞, 약산성은 476m이다. 성벽 위의 성가퀴에는 일정 한 사위를 두고 총이나 활을쏘는 구멍인 사혈을 내었다. 

동·서·남·북에는 각각 대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남문은 돌로 쌓은 무지개형 축대위에 지은 2층 다락건물이다. 

신성의 동문인 무지개형 문은 1만근의 무쇠를 부어서 만든것 이었는데 일제가 약탈해 갔다. 
성은 사방에 각각 장대를 두었다.

약산성에는 서장대(약산동대), 남산에는 남장대, 진망산에는 북장대, 모란봉에는 동장대가 있었다. 또한 약산 제일 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철옹성에는 물 원천이 풍부하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안에 3개의 시내가 흐르고 50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철옹성은 고려시대 이후 북으로 부터 쳐들어온 거란·몽골·홍건적·청나라 등 외적을 물리치는데 중요하게 이용되었다.

역사상 최고의 난공불락의 요새는 어디일까?
일본의 경우 오사카성, 히메지성이며 그중에서 난공불락으로 가장 유명한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축조한 구마모토성 이다. 구마모토성은 축조이래로 함락이 된 역사가 없는 성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내에 지었던 왜성들이 거의 다 난공불락에 속한다. 조선 명 연합군이 함락을 시키지 못해서이다. (물론 명나라에서 적극적이지 않은 점도 있지만.)

고대 시칠리아 역시 난공불락이라고 본다.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데메스가 고대 로마군에 맞선 성이다.

각종 공성병기를 아르키데메스가 고안한 병기에 다 부서지고 결국 시칠리아는 오랜 공성기간에 따른 식량부족 등의 사정으로 내부 반란에 의해서 함락이 된다.

지난번 일본 강진으로 임진왜란과 조선 백성의 한이 서려있는 철옹성이던 구마모토성에 균열이 발생하여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연앞에 이제는 지구상에 철옹성이란 존재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오늘도 무거운 마음의 철옹성을 부수고 후세에게 깨끗한 지구환경과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보전에 앞장서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행복한 수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