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59회]  

즐거워서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향락을 탐하여 근본을 잊는 것을 비유하여 하는 말이다.

223년, 촉주(蜀主) 유비(劉備)는 221년 부터 시작된 동오(東吳)와의 싸움인 이릉(夷陵) 전투에 출전 하였다가 대패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면서 제갈량(諸葛亮)과 이엄(李嚴)에게 아들 유선(劉禪)을 부탁했다.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이었고, 
역사에서는 유선을 후주(後主)라고 부른다.

촉나라는 승상 제갈량이 유선을 보필하며 이끌어 나가면서 여러 차례 위나라를 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국력만 낭비하다가, 제갈량 사후 30년인 263년에 망하고 말았다. 

CCTV 삼국지
CCTV 삼국지

당시 위나라의 실권자인 사마소(司馬昭)는 
유선을 위나라의 도읍 낙양으로 이주시키고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했다. 

사마소는 연회를 베풀어 유선을 위로했는데, 
연회 석상에서 촉나라의 가무를 연주하자 촉나라의 관리를 지냈던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금하지 못했는데, 유선만은 오히려 즐거워했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三國志) · 촉서(蜀書) 〈후주전(後主傳)〉》의 《한진춘추(漢晉春秋)》를 인용한 배송지(裴松之) 주(注)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진춘추》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마문왕이 유선과 함께 연회를 하는데 옛 촉나라의 가무를 연주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지만 유선은 웃으며 즐거워했다. 

왕이 가충에게 말했다. “사람의 흐리멍텅함이 여기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제갈량이 살아 있다 해도 이런 무능한 군주를 제대로 보필하기 어려울 텐데, 하물며 강유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가충이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어떻게 (촉나라를) 병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날, 왕이 유선에게 물었다. “촉나라가 생각나지 않소?” 유선이 대답했다. “여기가 즐거워서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극정이 이를 듣고 유선을 찾아보고 말했다. “왕이 만약 나중에 다시 묻는다면 눈물을 흘리면서 ‘선부의 묘가 멀리 '촉' 땅에 있어 매일같이 그리워 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십시오!” 

후에 왕이 다시 묻자 유선은 이전에 극정이 가르쳐 준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어떻게 극정의 어투와 똑 같은가?” 

유선은 깜짝놀라 눈을 크게뜨고 쳐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당신의 말씀과 같습니다!”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여기가 즐거워서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유선의 말에서 ‘낙불사촉’이 유래했다.

사례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데 명색이 사장이란 사람이 유흥에 빠져 ‘낙불사촉’하며 놀기만 하다니, 회사의 앞날이 깜깜하기만 하구나.

오늘도 나 자신의 근본을 망각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않는 주일을 맞이하시기를 베트남 호이안에서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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