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의 만행 
"왕 태후는 단도를 꺼내 동탁의 어깨를 찌른다."
이유의 보고를 받은 동탁은 잠시 눈을 감고 두 분의 명복을 빈 다음 왕 태후에게 갔다.

“홍농왕과 하 태후가 술 한 잔을 드신 후 조금 전 편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랬어요? 거 참 안됐군요! 왕가의 혈통이니 장사나 잘 지내 주시구려!”

왕 태후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동탁은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될까 적이 염려가 되었다. 이쯤에서 행동을 취 할 필요가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고의 방책이 하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상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이 필요한가요?”
“태후의 몸입니다!”

동탁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 태후에게 덤벼들어 걸치고 있는 옷을 남김없이 벗겨 버렸다. 태후의 하반신에는 선제가 부착한 장형이 가죽띠로 매어져 열쇠가 걸려 있었다.

삼국지 6화 중 한장면
삼국지 6화 중 한장면

“이게 대체 무엇이오?”
동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왕 태후는 수치와 분노로 알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저항하는 태후를 억누르고 단도로 띠를 자르자 음부에서 장형이 튀어 나왔다. 거기에 선제의 ‘宏’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동탁이 말했다.

“선제를 위해 정조를 지켜 오다니 훌륭한 일이로다! 그런 망령(亡靈)보다는 생신(生身) 의 남자 것을 맛 보아야지!”

왕 태후가 놀라 격렬하게 저항하자 동탁은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태후는 짐승이 된 동탁에게 새벽까지 열 번 이상 범해졌다. 아침이 되어 기가 꺾이고 순해진 왕 태후에게 동탁이 정복자의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정말 남자를 못 견디게 하는 여자로군! 
선제가 장형을 박아 넣은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앞으로는 내가 당신 남편이오! 궁 안에 자유로이 드나들고 천자의 침대에서도 자겠소! 상관있소?”

동탁은 침착하게 장형을 주워서는 잠시 생각한 후 ‘宏’자를 단도로 깎아 ‘卓’이라고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것을 왕 태후에게 주며 스스로 음부 속에 끼어 넣도록 하였다.

“앞으로는 내가 없을 때는 몸 안에 이것을 달도록 하시오!” 그러고 열쇠로 잠그고 큰소리로 웃었다.

왕 태후는 ‘卓’자가 새겨진 장형을 보자 너무 분해서 살이 떨렸다. 생각 할 틈도 없이 단도를 꺼내 방을 나가는 동탁의 어깨를 뒤에서 찔렀다. 동탁은 비명을 질렀으나 가죽옷을 입은데다 왕 태후의 힘도 약해 상처는 가벼웠다. 

동탁은 단도를 뽑아 돌아서서는 바로 왕 태후의 심장을 찔렀다. 왕 태후는 아들 협의 이름을 부르며 절명하였다. 그녀의 나이 25세였다. 
왕 태후의 죽음은 누군가의 독살로 처리되었다.

태후는 죽었지만 시신이 너무 아름답고 당돌해 동탁은 그녀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요리사를 불러 밀실에서 그녀의 몸을 해부 하였다. 그녀의 목을 베어 식탁에 올려놓고 그녀의 장으로 만든 순대를 먹으며 쾌감에 잠겼다. 

당시 중국에서는 기근이 들면 사람고기 먹는 일이 없지 않았다. 또한 문무백관들이 역적이나 배신자 의 시신을 씹어먹기도 하였다. 동탁은 왕 태후를 실컷 농락한 후 그녀의 온몸을 요리해 먹었다.

동탁은 그 후에 황제 유협의 조종자로 대권을 쥐고 낙양과 장안에서 난폭한 짓거리를 되풀이하며 악명을 떨친다. 왕 태후가 목숨을 걸고 지킨 아들 유협은 기구한 운명의 굴레를 쓴 후, 훗날 위(魏)에 제위(帝位)를 양보하게 되는 한제국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에 의해 산양공(山陽公)에 봉해진 후 서기 234년에 죽으니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제위를 선양하였기에 죽은 후 헌제(獻帝)라고 불렸다. 

동탁을 끌어들여 난세를 심화시킨 왕 미인,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해 나라의 기틀을 잡은 초선…. 《삼국지(三國志)》의 큰 뼈대는 이렇게 가녀린 여성들로 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삼국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저작권자 © 인터넷조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