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48회]    

삼국지 동탁역
삼국지 동탁역

때는 한제국(漢帝國) 중흥(中興)의 조(祖), 광무제(光武帝)로 부터 11대가 지난 효령황제(孝靈皇帝) 유굉(劉宏) 시대의 일이다. 황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관직을 팔아 사복을 채우며 환관들을 중용하고 외척에게 주요 직위를 주었다. 조정의 부패가 극에 달하니 하늘이 조정을 버린 것인가. 

어느날 파란 구렁이가 옥좌(玉座)에 앉고 암탉이 수탉이 되고, 대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메뚜기 떼가 밭을 메우고, 기아로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측근과 환관들이 보고조차 하지 않으니 황제 유굉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유굉은 13세에 즉위하였다. 20여 년간 낙양의 궁전에서는 매일같이 연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가려 뽑은 미녀들과 함께 환락을 즐기는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이 어리석은 황제는 그것이 자기가 해야할 일이라고 믿고있었다. 환관들 또한 황제를 돈과 여자와 술에 빠뜨려 정치에 마음 쓰지 못하도록 책략을 써 왔다. 

환관 가운데 제일 윗자리의 열 명을 십상시(十常侍)라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그들을 비판하는 자는 국외로 추방하거나 참혹하게 살해하니 백성들은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다. 

환관의 두목이자 황제로 부터 아버지라 불리는 장양(張讓)은, 매일의 일과로서 금소(禁所)에 드나들었다. 황제는 반나체 상태로 취해 있기 일쑤고 주위에는 노래와 춤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술과 음식이 넘쳐흘렀다. 

여자들도 아편에 취해 나체로 지냈다. 누워 있는 나체 여자의 음부에는 남근을 본뜬 장형(張形)이 박혀 있기도 하였다. 환관들은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 금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성욕을 채울 수 없는 한을 풀기 위해 대신 권력다툼과 돈벌이에 열중하였다. 

황제가 가장 아끼고 집착하는 왕 미인(王美人)은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상의가 찢어질 만큼 크고 아름다운 유방을 가졌다. 장양은 황제가 없으면 그 부드럽고 탄력 있는 유방을 쓰다듬고 즐겼으나 거기까지 뿐이었다. 

그는 ‘황제여! 마음껏 즐기시오! 우리 십상시는 비록 여자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그대보다 더 부자올시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또한 ‘아들아! 정치는 이 아비가 할 터이니 너는 지금처럼 그렇게만 계속 지내다오. 설령 비명에 간다 해도 새 황제를 옹립하여 이 권세 천년만년 누리리라!’, 그렇게 속말을 하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왕 미인의 불안
왕 미인은 눈만뜨면 언제나 황제의 몸위에 있었다. 왕 미인이 15세 나이로 제의 측실(側室)이 된지 어느덧 7년, 7년전 왕 미인의 아버지는 그녀를 대가로 고관의 요직을 샀다. 모든것이 돈으로 통하는 세상인지라 아름다운 딸을 가진자는 누구나 부자가 될수 있었다. 

황제는 매일 궁녀를 상대로 치정소동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반드시 왕 미인을 껴안고 지냈다. 아무리 탐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을 팔아 돈을 버는것과 아름다운 여자를 품는 일이었다.

황제는 왕 미인을 품을때면 ‘쾌락이란 끝이 없구나! 단지 그 쾌락을 끝없이 즐길수 있는 시간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원망스럽도다!’하고 한탄하였다.  황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일반 백성들은 남녀 관계는커녕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황제는 백성이란 어차피 그런 존재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만백성의 주린 창자에서 나는 가여운 소리보다 왕 미인의 교태 섞인 신음이 훨씬 중요하였다. 그런 왕 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시녀들이 꽃잎과 향수가 든 통을 가져와 몸을 씻겨 주고 화장을 해 주고 옷을 입혀 주었다. 

거울에 비치는 왕 미인의 가는 허리와 매끄러운 손발과 긴 목, 눈처럼 흰 살결, 큰 유방,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시녀들은 감탄과 함께 질투 어린 눈길을 감추기 바빴다. 왕 미인을 질투하다 못해 증오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하 황후였다.

황제가 “그대는 누구보다 아름다우니 죽을 때 까지 안고 싶다!”고 속삭이자 왕 미인은 “저 또한 황제 폐하의 품에 이렇게 안겨 영원히 지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 황후가 저를 시기하여 저와 아들 협을 해 할까 늘 두렵답니다!” 하며 얼굴 가득 수심을 드리 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짐이 끝까지 지켜줄 것이니 아무 걱정말아라!”

황제가 안심시켰으나 왕 미인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저러다 덜컥 자리에 눕기라도 하면… 결코 안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왕 미인은 황제의 생모(生母)인 동 태후(童太后)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황제에게는 하 황후가 낳은 장남 유변(劉弁)이 있으나 동 태후는 왕 미인이 낳은 유협(劉協)을 더 귀여워하였다. 

유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6살에 지나지 않은 유협은 유변보다 총명하였고 왕 미인을 닮아 외모 또한 수려하였다. 어린 유협이 어머니에게 그날그날의 일을 꼬치꼬치 보고하니 왕 미인은 아들이 나날이 철이 든다고 기뻐하였다. 

영악한 왕 미인은 황제의 사랑 속에서 아들 유협을 키우며, 동 태후를 등에 업고 황제의 어미가 되는 야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민희식 전서울대교수 글 발췌1~4) 내일은 2부로 이어집니다.

요즈음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오늘도 신명나는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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