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43회]  

왕윤의집 정자에서 긴 수염의 사내와 귀가 유난히 도 큰 사내가 바둑을 두고있었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은 긴 수염의 사내가 둘 차례였는데, 오른손으로 긴 수염을 매만질 뿐 좀처럼 착수에 나서지 않았다. 귀가 큰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우께서 바둑에 집중하지 않는 모양이구려!” 긴 수염의 사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검은 돌 하나를 바둑판에 착수했다. 

긴 수염의 사내가 착수하는 순간, ‘딱'하는 바둑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귀가 큰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아우께서 묘수를 두셨구려!” 긴 수염의 사내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묘수가 아니라 궁여지책이옵니다! 이 아우는 도저히 형님의 수 읽기를 당해 낼 재간이 없사옵니다!”

기실, 바둑의 판세는 누가봐도 귀가 큰 사내가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이 한수는 뒤진 판세를 단번에 크게 좁힐 수 있는 절묘한 묘수였던 것이다. 

바로그때, 8척장신의 호랑이수염의 사내가 우당탕,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내며 달려와 바둑판을 뒤엎어 버릴듯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형님들! 지금 한가로이 바둑을 둘때가 아니질 않습니까?”

긴 수염의 사내가 엄숙한 얼굴로 호랑이 수염의 사내를 노려보며 꾸짖듯 말했다. "큰 형님께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이냐?" 호랑이 수염의 사내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조조공이 동탁의 목을 찌르면, 우리도 거사에 나서야 하질 않겠사옵니까?" 순간 긴 수염의 사내가 귀가 큰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쯤 조조공이 동탁과 독대 중일 터, 이제 우리도 거사를 준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귀가 큰 사내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모한 거사가 아닌가? 필시 조조공의 거사는 실패할걸세!”

그때였다. 비단옷을 화사하게 차려 입은 소녀가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는 왕윤의 수양딸 초선이었다. 초선은 긴 수염의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조공께서 거사에 실패하신 후 낙양을 벗어났다 하옵니다. 동승상이 조조공의 거사를 눈치챘는지 방금 전에 여포공이 와서 아버님을 데려가셨고, 아버님께서 출타하시며 소녀에게 유비공께 소식을 전하라 하셨나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유비 삼형제였던 것이다.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조조공이 곧 거병을 일으킬 걸세! 이제 우리가 나설 때가 된 듯하네!” 순간 관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왕윤의 집을 떠나면 언제쯤이나 초선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관우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정자에서 내려왔다. 관우가 두 손을 모아 초선에게 인사를 하고서 유비를 따라 나서려는 찰나, 초선이 손을 들며 관우를 불렀다. 

사진출처 : 삼국지 명장관우 영화
사진출처 : 삼국지 명장관우 영화

"관우공!” 관우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초선의 손에 매화꽃이 그려진 비단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관우는 얼떨결에 초선이 내민 손수건을 받았다. 초선이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살펴가소서!...”

초선은 말을 마치자 얼굴을 붉히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초선이 시아에서 사라지자 장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장담 하는데, 초선 낭자가 형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게 틀림없구려!” 관우가 정색하며 말했다. "어허! 초선 낭자가 호의로 손수건을 준 것 뿐이거늘,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어느새 대문 앞에 이른 유비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우들! 일이 시급하니 어서 오게나!” 유비는 동탁이 조조의 거사를 눈치채고 숙청에 나설까 걱정 되었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약속이나 한듯 거의 동시에 유비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조조는 낙양을 벗어나 중모에 이르렀다. 이미 동탁이 조조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기에 조조는 초라한 옷을 입고 삿갓을 쓴 채 걸어서 중모를 지나가고 있었다. 중모를 거의 벗어날 무렵,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섰거라!”

중모 현령 진궁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조조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말에서 내린 진궁이 삿갓을 눌러 쓴 조조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중모를 지나가는 자는 모두 검문하라는 동승상의 명이 내려졌다! 삿갓을 벗거라!” 조조는 삿갓을 벗는 시늉을 하다 갑자기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진궁을 찔렀다. 진궁을 죽이고 나서 줄행랑을 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잔꾀에 당할 진궁이 아니었다. 진궁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조조의 검을 막아내고 조조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진궁이 냉소를 터뜨리며 조조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흥! 네가 동승상을 암살하려 했던 조조로구나!”

조조가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조조다! 동탁은 황제 폐하와 태후마마를 시해한 역적이거늘, 대장부가 어찌 이를 좌시 할 수 있겠는가?” 진궁이 잠시 침묵하더니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당장 이 자를 포박하라!” 

기실, 조조는 바로 오늘 오전에 동탁에게 술자리를 청했다. 동탁과 술을 마시다 왕윤에게 받은 단검으로 동탁을 암살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탁이 술에 취해 잠들자, 조조가 단검을 빼어들어 찌르려는 찰나, 여포가 들어왔다. 

조조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단검으로 다과를 잘라 먹었다. 여포는 우직한 성격이라 별 의심 없이 시녀를 불러 과도를 내오게 하였고, 여포가 동탁의 곁을 떠나지 않자 조조는 적당히 핑계를 댄 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조조가 인사도 없이 낙양을 떠나자, 동탁은 조조를 의심하여 전국에 방을 붙여 체포령을 내렸던 것이다. 깊은 밤, 조조가 목에 칼이 씌워진 채 함거에 실려 낙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진궁이 다가와 속삭였다. "어디로 가는 중이었소?”

순간 진궁이 눈빛을 번뜩였다. 조조는 진궁이 자신을 풀어주기로 결심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귓속말로 속삭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조조가 흥분을 감춘 채 대답했다. "진류로 가고 있었소!”

진궁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진궁은 이전부터 역적 동탁의 무리를 주살하기 위해 거병을 일으킬 작정이었소! 공을 풀어 줄터 이니 나와함께 거병을 일으키는것이 어떻겠소?”

조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실로 바라던 바이오!" 190년 정월, 조조가 진궁과 함께 진류에서 거병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한 제후들이 원소를 거기장군으로 추대하여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발해태수 원소, 남양태수 원술, 장사태수 손견, 진류태수 장막, 기주자사 한복, 동군태수 교모, 북평태수 공손찬, 연주자사 유대, 예주자사 공주, 서량태수 마등, 서주자사 도겸, 상당태수 장량, 광릉태수 장초, 산양태수 원유, 북해태수 공융, 하내태수 왕광, 제북상 포신 등 모두 17명의 제후들이 반동탁의 기치를 내걸고 거병을 일으켰다.(관우와초선 1~5회 전대호(孫武, BC545~470)발췌)

오늘도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고 몸도, 마음도, 따뜻한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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