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39회]  

하진 장군을 거절하는 초선
중평 6년(189), 환관을 보호해 온 영제(靈帝)가 죽자 누이동생인 하태후의 배경을 업고 대장 하진이 실권을 쥐었다. 초선은 13세로, 낙양의 장관인 왕윤의 양녀가 된지 어느덧 5년이 되었는 데 여자다운 매력이 활짝 피어나는 중이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금(琴)은 듣는 이의 마음을 녹였고 그녀가 움직일 적마다 다양하게 연출되는 몸 맵시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옥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흰 살결에다 무용으로 가꾼 날씬한 몸매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일찍부터 수많은 혼처가 있었으나 왕윤은 그 어느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왕윤이 양녀를 데리고 살 생각이라는 소문을 냈다. 

초선(사진출처 : CCTV 삼국지 드라마)
초선(사진출처 : CCTV 삼국지 드라마)

대장군 하진도 초선을 보는 순간 바로 매혹되었다. 왕윤의 저택에서는 자주 연회가 벌어졌는데 하루는 술이 거나해진 하진이 용기를 내어, 초선을 자기에게 달라고 떼를 썼다. “하진 나리! 부탁건대 그것만은 좀 참아주시오!”

말은 그렇게했지만, 하진과 그녀가 맺어지면 막강 한 권력을 손아귀에 쥘수 있다는걸 곱씹고 있었다. 이에 왕윤은 초선에게 하진의 뜻을 넌지시 전했다. 당시 관습으로 아버지의 말은 법과같은 것이었다. 초선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그 남자는 별로 쓸모가 없는 인물입니다. 누이동생 덕에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덕도 없고 재능도 없는 실로 한심한 인간입니다. 제아무리 부귀영화가 좋다 해도 그런 사람과 살 수는 없어요!”

이에 왕윤이 탄식하며 말했다. “정말 영리하구나! 네 말이 옳다! 네 뜻을 알았으니 하진 장군은 내가 잘 설득해 돌려세우마! 집안에 화가 미치지 않게 조심해서 일을 처리해야 겠구나!”

이듬해 하진이 환관들에게 살해돼 왕윤은 한숨을 돌렸다. 하나 이내 그보다 더 고약한 악이 나타났으니 바로 서량의 태수 동탁의 등장이었다. 

권력을 잡은 동탁의 신임을 얻은 왕윤은 사도(司徒)의 직책을 갖게 되었다. 동탁은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제멋대로 행동하며 왕미인의 아들이자 유변의 이모제(異母弟)인 유협을 옹립하고 하태후와 유변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동탁의 약탈과 능욕이 도를 넘으니 낙양은 공포의 잿빛으로 물들었다. 왕윤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으나 구체적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궁중에 나가서도 제대로 건의도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조조의 과감한 계획
당시 왕윤과는 달리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동탁에 맞서려고 한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조조였다. 조조는 ‘나에게 칠성검(七星劍)만 있다면 반드시 동탁을 처치해 보이겠다’고 큰소리쳤다. 

칠성검은 왕윤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도 였다. 조조는 황건의 난에서 크게 활약한바가 있어 낙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왕윤은 그의 날카롭고 자신에 넘치는 눈초리를 보고 그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기로 했다.

왕윤은 초선에게 멋진 향연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이윽고 잔칫상이 차려지고 조조가 초대되어 왕윤과 단둘이 대작하게 되었다. 차를 나르고 물러나는 초선을 눈여겨본 조조가 말했다.

“왕윤나리! 저 여인은 누굽니까?” 여느 사내들처럼 조조도 첫눈에 초선에게 반한 것 같았다. 왕윤은 불안에 사로잡혀 ‘중대사를 앞두고 여자의 꽁무니 부터 쫒는자가 동탁을 과연 처치할 수 있을까?’ 

“저의 양녀올시다!” “그래요?” 순간 조조는 여인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고 큰 결단을 앞둔 대장부의 얼굴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에 왕윤은 안도하였다. 그날 밤 초선이 왕윤에게 아뢰었다.

“저분은 하늘이 낳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가문의 배경 없이도 큰일을 할 수 있는 분 같습니다!”
이튿날 조조가 다시 왕윤을 찾아왔다. “어제 본 그 아이…. 이름이 초선이라 했나요? 정말 매력이 넘치더군요!”

벌써 초선에게 홀딱 반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조조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저 애를 동탁에게 헌납하는 게 어떻겠소? 

저 애가 연주하는 금과 요염한 춤을 보면 놈은 정신을 못 차릴게 분명하오! 그럼 놈은 분명 연회를 열고 술에 취해 그녀를 안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오!”

조조가 양녀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 이유를 알게 되자 왕윤은 당황하였다. “초선을 동탁에게 바치란 말이오? 그 포악한 놈에게?” “아니 바치는 연극을 꾸미자는 거요! 거사가 성공하면 그때 나리의 딸과 내가 결혼하리다!”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동탁의 목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하지만 초선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는지….”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조조라면 초선의 짝으로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조조의 계획을 들은 후 왕윤은 고심하기 시작했다. 역시 조조는 조조였다. ‘어찌할까?’ 왕윤이 고심 할 때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초선이 갑자기 튀어나와 외쳤다.

“의부님!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녀의 눈에는 강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얘야! 네가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다! 가서 잠이나 자거라!”

“아니에요! 이번만은 의부님의 명을 듣지 않겠습니다. 의부님이 그토록 심한 시름에 빠져 있는데 제가 편히 잠을 잘 수 있다고는 생각 마세요! 저는 당장에라도 조조 나리와 함께 동탁에게로 가겠습니다!”

“어허! 네 뜻이 천 근 바위보다 무겁구나! 그럼 초선아… 기어이 그리하겠다면 내 너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이제 나라의 운명이 한 어린 여인의 손에 달렸는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과 함께 왕윤은 조조에게 “자 조조 나리! 이제 초선을 동탁에게 데려가 주시오!”하고 부탁했다. 

초선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조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사모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뜨거운 눈동자이자 그 사랑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그 나이의 여자로서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는 강렬한 염원의 눈동자였다.

왕윤은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지낸 그 숱한 시간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초선을 안았다. 초선은 왕윤의 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민희식 전서울대교수글 발췌 1~4회)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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