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32회]    

 * 유비 ‘100대 1’ 전투에서 승리
기원전 216년 한니발의 군대와 로마 대군이 '칸나에'에서 전투를 벌였다. 로마는 한니발을 격멸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동원했다. 

한니발의 병력 수는 로마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니발은 중장보병(Hoplite)을 활처럼 휜 모양으로 배치했다. 중앙부에 병력을 집중시켜 종심을 깊게 했다. 중앙에서 로마 주력을 붙잡게 하고 양익(양쪽 날개)의 기병으로 로마군 전체를 포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강한 기병을 이용한 한니발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전투 중 포위당한 것을 안 로마군이 공포에 빠진 것이다. 세계 최강의 로마군이 오합지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6만 명이 사망하고 1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했다. 반면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은 겨우 6.000명의 병력 손실만 기록했다. 

군사집필가였던 아르당뒤파크대령은 고대전투를 연구했다. 그는 이해 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했다.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나 카이사르가 대승했던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승리한 군대와 패배한 군대의 병력손실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10 대 1이 넘는 병력 손실의 원인은 무엇 이었을까? 파크 대령은 이긴 군대가 적의 대열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병사들은 대열이 무너지는 순간 결속감과 안정감을 잃었다는 것이다. 

‘공포가 승리하면 모두가 패배자’ 
고립됐다고 느낀 병사들은 공포에 빠져버린다. 무기를 던지고 도망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의 병사들에게 심리적으로 공포를 심어주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해치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그래서 수천 명으로 수만 명을 대량살상하는 전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삼국지에도 이런 대량살상 전투가 나온다. 

후한 말기에 나라가 어지러워 지면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황건적은 무려 40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정규 군사훈련을 받은 자는 별로 없었다. 

후한 건국 후 의무병역을하는 도위제도가 폐지 됐다. 농민들은 생업에만 종사하고 기초훈련 조차 받지 않았다. 이런 농민들로 이뤄진 황건적에게 전략과 전술 개념이나 확고한 충성심이 있을리 없었다.

당시 유비는 관우·장비와 함께 500명의 의군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유비는 유언의 진영에 가담해 정원지가 이끈 5만의 황건군과 첫 전투를벌였다.

“저들의 숫자는 우리의 백 배가 넘는다! 그러나 저들은 비정규 군이다!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적장을 죽여 기를 꺾으면 무너질 것이다! 

원래 농민들은 가혹한 상대에게 약한 법이다! 관우와 장비는 사정을 보지 말고 적장을 단칼에 베어야 할 것이다!” 

황건군 적장 먼저 죽이니 무리는 ‘오합지졸’ 
유비의 말대로 첫 번째 전투에서 장비와 관우는 적장인 정원지와 부장들을 먼저 죽였다. 적장이 죽는 순간 유비의 병력이 공격했다. 

황건적의 무리는 자기들의 대장이 죽자 공포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급격히 대열이 무너지면서 도망치기에 급급했고, 5만에 가까운 황건적의 무리를 몰살시킨 대량살상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황건적은 적장을 죽이면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유비의 혜안이 놀랍다. 그리고 유비의 지시대로 적장을 단숨에 베어 넘긴 장비와 관우의 용맹도 대단했던 전투다. 

루비콘 강을 건너는 카이사르 이때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의 태피스트리. 베른 역사박물관 소장.
루비콘 강을 건너는 카이사르 이때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의 태피스트리. 베른 역사박물관 소장.

카이사르의 파르살루스 전투도 좋은 예다. 기원전 48년 8월 9일 카이사르파와 폼페이우스파 간에 전투에서 당시 폼페이우스의 병력에 비해 절대 열세였던 카이사르는 포위섬멸 전략을 구사했다. 

우수한 고참 병사들로 구성한 부대를 맹훈련 시켰다. 이들은 폼페이우스의 정예기병 7.000명을 막고 패퇴시켰다. 적의 기병이 무력화 되자 카이사르는 예비병력 까지 전 병력을 총동원했다. 폼페이우스의 부대를 포위해 공격하자 적 병사들은 공포에 빠져 버렸다.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폼페이우스 쪽은 1만5.000명이 전사하고 2만4.000명이 포로가 됐다. 카이사르 쪽의 전사자는 200명 뿐 이었다. 거의 200대 1의 대량살상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기습으로 적을 공포에 빠트려라. 
기원전 113년, 독일 북부에 살고 있던 킴브리족이 로마를 공격해 왔다. 로마의 4만 병력은 노레이아 전투에서 대패했다. 그다음 출진한 로마의 8만 병력도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전멸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은 로마의 구원투수는 마리우스 장군이었다. 마리우스는 로마군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전술을 바꿨다. 안개가 짙게끼자 기병대를 먼저 출격시켜 킴브리족 기병대를 거세게 강타했다. 

기습을 받은 킴브리족 기병은 공포에 빠졌다. 이들은 후방에 있는 자기편 보병들을 짓밟고 도망쳤다. 킴브리 보병 전사들이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공포에 빠진 킴브리족 병사들은 로마군에 저항도 못하고 죽어갔다. 

베르켈라이 전투에서였다. 킴브리족 14만 명이 죽고 6만 명이 잡혀 노예로 팔려갔다. 
몇 백명의 병력 손실로 20만 명의 킴브리족을 죽이거나 사로잡은 대량살상전투였다. 

황건적의 난에서 보았듯이 공포에 떤 병사가 승리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암'이 걸리면 암 때문에 죽은것이 아니라 암을 두려워해서 죽습니다. 오늘도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생활하시는 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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