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10회]

소제(昭帝)-중국 전한의 제8대 황제. 
BC 81년 여러 군국의 현량을 등용하여 무제시대의 여러 정책의 개폐를 논하였다. 

다음해 연왕 유단, 좌장군 상관 걸, 어사대부 상홍양 등은 곽광을 물리치려는 모반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모두 주살되었다.
(BC 94 ~ BC 74, 유불릉중국 전한정치)

유불릉(劉弗陵) 무제(武帝)의 여섯째 아들. 선왕의 유언에 따라 8세에 즉위하였다. 때문에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 곽광(霍光)이 보좌하였다. 

BC 81년(始元 6) 여러 군국(郡國)의 현량(賢良 :지방에서 추천하는 선비)을 등용하여 무제 시대의 여러 정책의 개폐(改廢)를 논하였다. 다음해 연왕(燕王) 유단(劉旦), 좌장군 상관 걸(上官桀), 어사대부 상홍양(桑弘羊) 등은 곽광을 물리치려는 모반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모두 주살되었다.

소제가 죽자, 후사(後嗣)가 없었기 때문에 곽광은 무제의 손자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제위 (帝位)에 앉혔으나, 27일 만에 폐하고 민간으로 부터 선제(宣帝)를 영입하여 즉위시켰다. 

소제(昭帝-8대)는 삼국시대 '위' 나라의 인물로 자는 원백(元伯). 서조연을 지내면서 263년 등애와 종회가 '촉'으로 출병 할 때 종회에 대해서 믿기 어려운 사람이니 사마소가 '촉' 정벌을 종회에게 시키는 것을 말린다. 

그러나 사마소는 '촉'나라를 공격해 취하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처럼 쉬운데도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길 안 된다고 했지만 유독 종회만이 나와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한다.

또한 사마소는 반란에 대해서는 '촉'을 멸망 시킨 후에 중원의 장사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촉'국의 남겨진 백성들은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품을 것이니 비록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 

또한 '촉' 정벌 이후 종회는 등애가 모반 혐의가 있다고 할 때 등애보다 군사가 더 많은 종회를 시켜 그를 치게 했는데, 이에 대해 질문하자 사마소가 신의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저버리지 않는한 다른 사람을 의심하냐고 하며 장안에 이르면 다 알게 될 것이라 하고 결과적으로는 사마소의 예견대로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종회에 대해서 뜻이 크고 마음이 높은 사람이라 그 홀로 대권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며, 사마소가 어찌 모르겠냐고 하자 아시면서도 어찌하여 다른 사람을 함께 보내 그 직을 맡게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사마소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뒤에 사마소로 부터 절대 누설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빈틈없는 헤아림에 감복해 엎드려 절한다.

'촉' 정벌 이후 종회가 등애의 표문을 중간에 가로채서 등애의 글씨를 흉내내 오만한 말로 바꿔 등애에게 모반 혐의를 씌우도록 했는데, 사마소가 이 표문을 보고 분노해서 가충의 진언으로 종회를 시켜 등애를 잡게 하면서 자신도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기로 한다. 

그러자 소제가 종회의 군사는 등애보다 여섯 배나 많아서 종회만으로도 충분한데 몸소 나아가냐고 묻는데, 사마소가 옛날의 말을 잊었냐면서 이전에 종회가 뒷날에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면서 이번 출정은 종회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소제는 잊으셨을까 염려되어 물어본 것이라 면서 그런 뜻이 계시다면 비밀에 부쳐야 한다면서 새나가서는 안된다고 한다. 기록도 많지 않은데다 가 '후한' 황제인 소제에 가려져서 묻혀있는 인물 이자 '후한'의 황제인 소제마저 헌제에게 묻혀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안습의 인물이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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