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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61부] '촉' 나라의 인물들 "제갈량 사후에 '촉'을 짊어진 명장" ‘강유’ 
[삼국지/61부] '촉' 나라의 인물들 "제갈량 사후에 '촉'을 짊어진 명장" ‘강유’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9.05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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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406회]
삼국지 영화 캡처
삼국지 영화 캡처

“나는 초려(草廬)를 나온이래 널리 어진 이를 얻어 내가 평생 배운바를 물려주려 했는데 이제야 그 원을 풀게 되었다!”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위'의 천수군을 공략하다 강유를 사로잡고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적장을 잡은 기쁨이라기 보다는 쓸 만한 제자를 얻은 스승으로서의 기쁨이었던 셈이다. 강유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감격해 했다.

강유를 얻을 때 제갈량은 이미 잡았던 '위'군 대도독 하후무를 미끼로 쓰기위해 놓아주었는데, 강유를 얻은 다음에도 그를 쫓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장수들이 ‘왜 하후무를 다시 잡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갈량은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후무를 놓아준 것은 오리새끼 한 마리를 놓아준 것이나 다름없고, 강유를 얻은것은 봉황 한 마리를 얻은 것과 같다. 봉황을 얻었는데 굳이 오리새끼를 뒤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명장 강유(姜維), 자는 백약(伯約). 
병법에도 밝고 무예에도 뛰어나 가히 문무와 지용(智勇)을 함께 갖춘 당대의 영걸이라 할만 했다. 제갈량은 자신의 의중을 가장 잘 헤아리는 강유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진중에서 작전계획을 수립 할 때 종종 불러 의논하곤 했다. 

'오장원'에서 최후를 맞게 된 제갈량은 강유를 침상 가까이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 수명은 다했다. 나는 평생동안 깨우친 바를 모두 적어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는 군사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사항이 적혀있다. 오직 그대만이 이 책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 생각되어 물려주니 잘 간직했다가 유용하게 활용토록 하라!”

강유의 진가는 제갈량 사후에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제갈량이 사라진 '촉'에서 최고의 장수로 성장하여 마침내 대장군이 되었다. '촉'의 군권을 한 손에 쥔 강유는 '위'를 정벌하기 위해 투혼을 불태웠는데, 그것은 제갈량이 살아있을 때부터 변두리 약소국가인 '촉'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싸우면서 활로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위'의 실권자인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피바람을 일으켰고, 그에 반기를 든 무장 하후패가 '촉'으로 투항해 왔다. 강유는 드디어 '위'를 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대군을 일으켜 '북벌'에 나섰다. 그러나 사마의 부자(父子)의 선방으로 첫 출정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에도 강유는 수차례에 걸쳐 '북벌'에 나섰으나 번번이 '위'의 명장 등애에게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강유가 고군분투하며 싸우고 있는 사이, '촉'주 유선의 곁에는 환관 황호가 권세를 잡고 날뛰고 있었고, 그 때문에 '촉'의 조정에는 간신배들만 득실거리고 있었다.

다시 전열을 정비, '북벌'에 나선 강유는 마침내 결정적인 승기를 잡고 '위'군을 몰아붙였다. 이때 '위'장 등애는 환관 황호를 매수하는 한편, 첩자를 풀어 ‘대장군 강유가 반역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 유언비어에 넘어간 '촉'주 유선이 강유를 불러들이니 그의 '북벌'은 또다시 실패한다.

이렇듯 '촉'의 허점이 안팎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자 '위'의 실권자 사마소는 드디어 '촉' 정벌의 기치를 올렸다. '위'의 명장 종회와 등애가 이끄는 대군이 두 길로 나누어 '촉'으로 쳐들어 왔다. 강유가 전방에서 종회의 대군을 막고 있는 사이, 등애가 이끄는 '위'군은 지름길로 들어와 성도를 포위했다. 겁에 질린 '촉'주 유선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유비가 천신만고 끝에 세운 '촉'이 그 아들대에 이르러 허무하게 멸망하고 만 것이다. '촉'주의 항복 소식을 들은 강유는 칼로 바위를 내려찍으며 분통을 터뜨렸으나, 이렇게 된 이상 그도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유가 완전히 손을 든 것은 아니었다. 강유는 '위'장 종회와 등애가 서로 앙숙임을 간파하고 두 사람 사이를 이간시킨 다음, 종회를 꼬드겨 '촉'을 부흥시키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종회의 군문에 항복한 강유는 그의 공명심에 한껏 불을 붙였다.

“장군의 위명(偉名)을 듣고 우러러 흠모해 온지 오랩니다. 오늘날 사마씨가 저렇게 위세를 부리는 것은 모두 장군의 공입니다. 이제 장군에게 항복합니다만, 만약 장군이 아닌 등애였다면 나는 죽기로 싸웠을 것입니다!”

'촉'의 으뜸가는 장수인 강유가 자기를 알아주자 기분이 좋아진 종회는 강유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화살을 꺾어 형제의 의를 맺었고, 강유는 전에 거느리던 '촉'의 군사를 다시 거느리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위'장 종회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그의 앙숙 등애가 이미 '촉'주 유선의 항복을 받아 기세등등 하고 있는데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또 종회는 등애의 여섯 배에 달하는 군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강유의 지모와 힘을 보태 등애군을 평정하고 독립하여 '촉'을 통치해 보려는 야심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촉'주 유선의 항복을 받은 '위'장 등애가 뒷일을 제멋대로 처리하자, '위'의 실권자 사마소는 종회에게 등애를 체포하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마침내 종회는 앙숙인 등애를 잡아 '낙양'으로 압송시킨다. 종회는 사마소가 자신마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강유와 함께 '위' 조정에 반기를 든다. 강유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서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를 어찌할 거나! 부하들에게 자신을 따를 것을 강요하던 종회가 부하들에게 살해되고 말았으니. 강유는 일이 그르쳐졌음을 깨닫고 스스로 칼을 빼어 자결하니 이로써 '촉한'부흥의 꿈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위'군들은 강유가 종회로 하여금 반역을 하도록 부추겼다 하여 강유의 시신을 끌어내어 배를 갈랐는데, 그의 쓸개가 계란 만하더라고 한다. 그만큼 강유가 간담이 큰 인물이었다는 얘기이리라.

강유는 쓰러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한 몸에 짊어지고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촉'의 명장입니다. '촉'이 제갈량 사후에도 30년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러나 강유가 너무 무리하게 자주 '북벌'을 시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촉'의 멸망을 앞당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느쪽의 의견이 옳든 강유의 눈부신 공적과 투혼은 '촉'의 멸망사에서 한 떨기 찬란한 꽃으로 남으리라 봅니다.

오늘도 신명나는 수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오늘도 마카오에서 인사드립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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