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대군 수장으로 건강한 국가 만들기 앞장설 터

[조은뉴스=박진호 기자]   애국심과 봉사정신으로 걸어온 12년 - 대한민국 방재의 새 역사 서막

지난 2009년 11월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청 4층 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방재 역사에 전기를 마련할 작지만 의미 있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이날 전국 16개 시·도 자율방재단 협의회장들은 ‘2009 자율방재단 임시총회’를 개최, 자율방재단 전국 중앙협의회를 공식 출범시키고, 만장일치로 현 강남구 방재단장인 김성용 단장을 총재로 선출한 것.
이날의 환골탈태(換骨奪胎) 결의는 그 동안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온 자율방재단이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재활동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김 총재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해병전우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파견 봉사를 나간 주인공이고, 전국 80만 해병전우회 중 유일한 국가재난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한 장본인이 바로 김 총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커다란 사건들의 대부분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김 총재의 향후 행보가 사뭇 기대된다.

가슴에서 출발한 봉사인생

지난 2005년 1월 20일~30일. 대한민국 해병전우회는 역사상 최초로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지방에서 해외 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 해외 봉사자 명단 속에는 김성용 총재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진도 8.5의 강진으로 발생하여 전체 희생자의 절반이 넘는 무려 13만명이 숨진 최대의 피해지역인 반다아체에서 김 총재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김 총재는 이후에도 해외 여러 나라를 돌며 수많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김 총재가 지금까지 펼쳐온 숱한 봉사활동 중 하나의 단편에 불과하지만 이는 김 총재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총재가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해병대 제대 후 사업을 진행할 즈음이다.

당시 김 총재는 ‘국가를 위해 포괄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중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해병대에서 청춘을 불사른 탓인지 유난히 애국심과 희생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라고.

김 총재는 고민 끝에 해병대 전우회에 가입했고, 그의 봉사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 총재는 이때부터 온갖 재난재해 현장을 쫓아다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언론 사회면 톱을 장식했던 굵직굵직한 재난재해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또한 꾸준하게 독거노인 관리는 물론,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방재에 관련된 많은 활동을 했다.

현재 10인의 해병 중 한명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80만 해병 중 유일한 국가재난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각종 재난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쳐온 김 총재가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자율방재단의 초대 총재의 자리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렇기에 우리나라 방재역사와 함께 해 온 김 총재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이다.

김성용 총재가 추구하는 세가지

앞으로 3년간 자율방재단을 이끌게 될 김 총재는 수많은 일들을 구상 중이다. 특히, 이 중 세 가지를 특별히 역점사업으로 펼칠 계획이다.

첫째는 바로 법의 뒷받침이다. 김 총재는 현재 방재단의 근간인 자연재해대책법(제66조 시행령 60~65)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방재단의 활동이 자연재해대책법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으로 개정 논의, 보완해 포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김 총재의 주장이다.

둘째는 교육부문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은 스스로가 지킬 수 있도록 전문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교육체계의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김 총재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 방재관련 교육기관이 있음에도 전국적으로 중구난방이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론과 실습 교육을 통한 양과 질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율방재단 중앙회의 일괄적인 교육으로 통폐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율방재단의 도움이나 기본적인 안전지식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다음(DAUM) 카페 CAINDS(cafe.daum.net/cainds)를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좀 더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 운영과 알차고 유익한 정보제공에 앞장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셋째는 방재단원의 구별화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난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해 온 김 총재가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구조단과 민간인과의 구별이 쉽지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전문지식과 경력이 없이 의지만으로 사고현장에 나선 민간인들의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이러한 발생하지 않아도 될 애꿎은 사고에 안타까웠다고.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방재단원을 구별 지을 수 있는 특색 있는 복장. 김 총재는 이를 위해 연세대 방재센터에 있으면서 방재단 복장을 3년여에 걸쳐 연구개발 하였고, 마침내 시안을 완성해 세상에 선보였다.

김 총재가 선보인 복장 시안은 옷 자체를 초록색으로 통일했다. 이는 수습 복구를 넘어 부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큰의미를 담고 있다.  방재복 상위 뒷면에는 ‘CAIND’라는 로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로고는 소방방재청이 공모를 통해 만든 용어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김 총재는 이러한 방재복의 도입으로 전국 100만 방재단원이 민간인과 구별되어 안전하고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총재는 이외에도 오는 2010년 5월 25일 ‘소방 방재의 날’을 맞아 전국 방재단 단원들을잠실 운동장에 집결시켜 이명박 대통령을 모시고 ‘제1회 방재단 경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포부다. 이날 행사를 통해 각 지역에서 활동했던 방재 활동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 방재단 선별 등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 할 예정이다.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완성을 위해

김 총재는 우리나라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이 보다 체계적으로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종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허술함과 미비함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도 진도2.0이상의 지진이 해마다 50회 이상 발생하고 있고, 그 규모 또한 점차 커지고 있어 대형재난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는 게 김 총재의 설명이다. 김 총재는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으로 전문지식이 없는 인사들의 등용을 지적한다. 실제로 소방방재를 관장하는 주요 인사들의 경우 전문지식 없는 토목, 건축, 행정을 전공한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김 총재는 또한 전국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의 통합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더 이상 대형재난의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 물론 통합의 중심은 자율방재단이다. 이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지만 현재 3,000여개의 사회단체, 시민단체를 통틀어 국가의 법과 행정의 뒷받침을 받는 단체는 자율방재단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자율방재단은 2005년 자연재해대책법이 개정되면서 이 법에 링크됐다.

김 총재는 이처럼 자신이 그리고 있는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또 그에 일조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2년 동안 현장에서 활약하면서 주위에서 이른바 ‘재난 박사’로 불리우며 존경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이론에 부족하다는 생각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학업에 매진 중이다. 김 총재의 서재는 지금도 새벽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 PROFILE 】
현 전국자율방재단중앙회 총재
연세대학교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 /전략기획실장?
KCU대학교 소방방재학 전공?
해병대전우회중앙회 해외봉사
BCP재난관리사, 방재안전관리사

<인터뷰 中>
재난 현장에서 입어야할 복장 시안 중 옷 자체의 초록색은 수습 복구를 넘어 부흥을 뜻한다. 일본 같은 경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난을 수습, 복구 차원을 넘어 부흥 단계, 즉 원상 복구를 넘어 재난 지역을 역사체험장, 역사박물관 등을 만들어 교육의 장,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하여 예전보다 더 잘사는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녹색 성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방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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