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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34부]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북방의 효웅(梟雄), 백마장군" '공손찬' 
[삼국지/34부]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북방의 효웅(梟雄), 백마장군" '공손찬' 
  • 사단법인 독도사랑회 박철효 사무총장
  • 승인 2018.08.09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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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효의 세상이야기 [제 2.379회]
공손찬 (사진 출처: 중국 드라마 ‘삼국지’)
공손찬 (사진 출처: 중국 드라마 ‘삼국지’)

 

난세의 영웅들 중에는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경우보다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중도에 탈락하는 인물은 틀림없이 그럴만한 요인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난세만큼 영웅들의 기량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고 공정하게 평가되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중도에 탈락하는 인물들의 실패요인을 찾아보는 것은 뜻을 세우고 꿈을 펼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중도에 패망하는 군웅 중의 한 사람인 공손찬의 활약상과 패망 요인, 그리고 남긴 업적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공손찬(公孫瓚), 자는 백규(伯珪). 
'중원'의 최북방인 고구려와 인접한 '요서' 지방의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부터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으며, 성장하면서 상대를 압도 할 만한 풍채를 지니게 되었다.

공손찬의 인물됨에 반한 그 지역 태수가 자신의 외동딸을 주어 사위로 삼은 뒤, 당대의 석학 노식의 문하에 유학을 보냈다. 거기서 공손찬은 나이 어린 유비를 만나 함께 수학하였고, 후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다. 

황건적이 창궐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공손찬은 그곳 청년들을 규합하여 황건적 토벌에 앞장섰고, 북쪽 변방을 어지럽히는 선비족과 오환족을 평정 하여 용맹을 떨치면서 당당히 군벌로 성장했다. 

또 '북평' 태수로서 동탁을 토벌하는 17제후 연합 군에도 참여하여 중앙무대에 등장했다. 이때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도 그의 진영에 함께 있었다.

연합군이 내분에 휩싸여 제후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공손찬도 군마를 이끌고 근거지로 돌아가 기업(基業)을 일으킨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부터 차근차근 평정해 나가면서 삼국지 전야에 등장하는 군웅들 중에서 가장 먼저 당당한 세력을 갖는 북방의 강자로 부상한다. 

이 무렵, 공손찬은 '하북'의 군웅 원소와 '기주(冀州)'를 두고 다투다가 서로 원수가 된다. 

두 강자는 연일 전투를 벌이며 '북방'지역의 패권을 놓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계속했지만 서로 실력이 엇비슷 해서인지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당시의 세력분포를 보면 여포를 영입한 동탁은 '도성'에서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하고 있었고, '북방'의 공손찬은 '남양'의 원술과 연합하여 원소와 조조의 연합세력과 맞서고 있었다. 그때 유비는 공손찬의 비호 아래 '평원' 땅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동탁이 죽은 후, 황제가 동탁의 잔당인 이각과 곽사에게 쫓겨 '낙양' 주위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 유비는 공손찬에게 이때를 놓치지 말고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나아가 황제를 받들자고 진언했다. 

당시엔 군웅들이 아직 기반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공손찬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현제(賢弟)의 충고는 고마우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원소가 '낙양'으로 가는 길을 내줄 리도 없고, 설사 황제를 모신다고 해도 그 득실을 헤아릴 길이 없네! 공연히 '낙양'으로 가서 제후들의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곳에 머물면서 내실을 기하겠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공손찬, 
황제를 등에 업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은 패자(覇者)가 되는 지름길임은 물론, 정통성 확보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을…. 
결국 재빨리 군마를 거느리고 '낙양'에 입성한 조조가 실권자로 발돋움하지 않는가.

그런데 공손찬은 '북방'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확립한 것에 만족을 했는지 갑자기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거대한 성채와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막대한 식량을 비축하는 등 일가 권속들과 함께 안주 할 준비를 했다. 

이때 조조의 부추김을 받은 원소가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공손찬은 나가서 싸우는 대신 성안에서 굳게 지키는 작전으로 맞섰다. 

그러다가 원소군의 주력부대가 집중적으로 공략 하는 쪽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공손찬의 군사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기도 급격히 저하되었다. 

다급해진 공손찬은 흑산적(黑山賊)의 우두머리 장연에게 밀계를 적은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 했다. 그러나 사자를 사로잡은 원소가 그 계략을 역이용 하는 바람에 참패하여 공손찬은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만다. 

이어, 원소군이 땅굴을 파고 누각 안으로 들이닥치니 도망쳐 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공손찬은 처자식을 먼저 죽이고 스스로 불타는 역경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고 만다. 

백마(白馬)를 타고 전장을 누비면서 맨 먼저 기업(基業)을 일으켰던 '북방'의 효웅(梟雄) 치고는 참으로 비참한 종말이 아닐 수 없다. '북방'의 패권을 건 두 강자의 건곤일척의 싸움은 결국 원소의 승리로 끝이 난다.

공손찬의 패망 원인을 찾아볼까요?
첫째, 대국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습니다. 유비가 황제를 받들어 모시자며 '낙양'으로의 출진을 권했을 때 모험을 한번 해 보았어야 했습니다. 

난세에는 도박도 필요한 법 입니다. 
또, 조조마저도 두려워했던 원소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은 그의 부족한 안목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지요. 원소와 자웅을 겨루어야 했다면 조조와 연합하여 남북에서 협공을 했어야 했습니다.

둘째, 인재를 모으고 활용하는데 소홀 했습니다. 특히 그가 뒤를 보살펴 주었던 유비의 안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유비를 끝까지 곁에 두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패망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제발로 찾아온 조자룡 같은 무장을 ‘속마음을 알 수 없다.’ 하여 중용하지 않은것도 빼놓을 수 없는 실책이지요.

셋째, 그 자신의 만심(慢心)을 경계 했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성공하여 '북방'의 강자로 발돋움 했으나 조그마한 성공에 만족하여 긴장의 고삐를 풀고 만 것입니다. 

천하가 평정되어 최후의 승자로 남을 때 까지 한 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난세에, 거대한 누각을 짓고 호강을 생각한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요?

'북방'의 효웅 공손찬, '북방' 오랑캐들을 모두 평정하여 군웅들이 안심하고 '중원'에서 싸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놓고, 또 일개 서생이었던 유비를 거목으로 키워서 '중원'으로 내 보낸 후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조그마한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긴장의 끈을 놓지않는 활기찬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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